어려울때 도움이 참도움이다(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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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한쪽에서는 과소비 풍조를 걱정하는 소리가 들리는가 하면,다른 한쪽에서는 내년까지 이어질 경기침체를 우려하는 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또 한해가 저물어가고 있다.
두말할 나위없이 경기침체와 과소비 풍조는 상반된 경제논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엄연하게 공존하고 있는 까닭은 과소비 풍조에 물든 사람들에게는 경기침체를 걱정하는 소리가 들리지 않고,경기침체를 우려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세밑은 들뜬기분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이것이 금년을 불과 며칠밖에 남겨놓지 않은 오늘의 사회적 분위기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소외계층의 사람들은 더더욱 쓸쓸하고 우울한 세밑을 보내고 있다. 보육원·양로원·재활원 등 각종 복지시설에 수용돼 있는 불우한 사람들에 대한 도움의 손길이 예년에 비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관계자들은 그 까닭의 첫째로 경기침체를 꼽고있다. 매년 불우이웃돕기에서 매우 중요한 비중을 차지해오던 공공기관·민간단체·기업체들이 운영난에 허덕여 남을 도울 여유를 갖지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하기야 남을 돕는다는 것은 여유가 있을때만 가능하다. 자신이 먹지도,입지도 못하고 있으면서 남에게 먹을 것,입을 것을 도와주는 경우란 상상할 수조차 없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여유가 있을때만 남을 돕는다는 것은 손쉬운 일이고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거기에는 진정이 들어있지 않을 수도 있다.
도와주는 사람의 진정이 들어있는 도움이란 자신도 충분하지 않을때의 도움이다. 헐벗고 굶주린 경우까지 해당하는 것은 아니지만 별로 여유를 갖지못한 상태에서의 도움이야말로 나눠쓰는 정신,쪼개쓰는 정신인 것이다. 거기에 진정한 도움의 정신이 들어있는 것이다.
경기침체라고는 하지만 오늘날 우리사회의 형편이 그처럼 나눠쓰는,쪼개쓰는 도움의 정신을 발휘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려운 상태에 빠져있는가 하는 것도 생각해 볼만한 문제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않을 것이다. 오히려 여유있는 사람들은 안써도 될 돈을 흥청망청 써대면서 불우이웃에 대한 도움은 외면하고 있다.
한예로 최근 한 지방경찰서에서는 관내 유지와 기업체의 도움을 받아 호화판 망년회를 벌여 빈축을 샀다. 경찰관들의 호화판 망년회를 열도록 도와준 돈 있는 사람들이 경기침체를 우려하는 사람들일 까닭이 없고,불우이웃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일 까닭은 더더욱 없다.
이것이 곧 우리사회에 팽배해 있는 이기주의적 소산의 한예다. 혹 경찰관들은 자신들이 불우이웃이라 생각했을 수도 있고,도움을 준 사람들은 불우이웃을 도왔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 광경을 바라본 사람들 가운데 그렇게 생각한 사람들은 하나도 없었을 것이다. 경찰관들은 당연한 도움을 받았고 준 사람들은 그에 대한 반대급부를 염두에 두었으리라 하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들일 것이다.
반대급부를 염두에 둔 도움이 바로 이기주의다. 불우이웃돕기가 예년에 비해 저조한 것은 그같은 이기주의가 더욱 팽배해 가고 있다는 한 증거다. 불우이웃을 돕는 행위에는 반대급부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과소비 풍조에 따른 불우이웃돕기의 외면도 예외는 아니다. 지방도시의 한 관계공무원은 『예년에는 대학생 봉사단체의 불우이웃에 대한 봉사활동이 많았으나 과외부활 이후 대학생들의 소비풍조가 번지면서 관심이 크게 줄었다』고 풀이했다.
여유가 없을 때는 앞장서서 불우이웃에 대한 관심을 보이면서 막상 여유가 생기니까 오히려 관심을 거둬들이고 있다는 얘기다.
여유가 생기면 진정이 사라지고 이기주의가 발동한다. 경기가 침체해 있을때,여유가 없을때 남을 돕는 것이 참도움이다. 세밑,불우이웃에 대한 조그마한 온정들이 이 사회를 이기주의 없는 밝은 사회로 인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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