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능 5% 퇴출시킨다지만 될 가능성 로또 당첨 확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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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한국은행이 '울산발 인사실험'에 동참했지만 시늉 내기에 그쳤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22일 한국은행은 올 초부터 1년에 두 번씩 직원의 근무 성적을 평가해 5회 연속 하위 5%에 포함되면 인사상 불이익을 주도록 인사평가 제도를 바꿨다고 밝혔다.

한은은 이달 초 처음으로 이 같은 방식으로 직원을 평가했다. 이번 조치는 2006년 감사원 감사에서 방만한 운영에 대해 지적을 받은 후 나온 것이다.

바뀐 평가제도에 따르면 3회 연속 하위 5%로 평가받은 직원은 인사 상담을 받아야 한다. 이를 통해 원인 분석과 개선 방안 등을 마련한다는 것이다.

그런 후에도 연속 2회 하위 5%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부서를 옮기는 것은 물론 승진.연수 등에서 불이익을 받는다. 성과급이 다른 사람의 70%로 줄어들고 이후 평가 때마다 3분의 1씩 추가로 삭감된다. 급여 측면에서 보면 사실상 퇴출과 다름없다는 것이 한은의 설명이다.

한은은 또 팀장과 국.실장 등 간부에 대해서도 부하직원들의 상향평가를 토대로 보직퇴출 시스템을 시행키로 했다.

간부들의 관리능력 평가 결과 2회 연속 80점 미만이면 인사상담을 받도록 하고, 이후에도 2회 연속 80점에 미달하면 국.실장은 다음 인사 때 직책에서 배제, 팀.반장은 팀원으로 강등 조치된다. 한 한은 직원은 "일단 퇴출의 물꼬가 트인 만큼 운용하기에 따라 퇴출 폭이 커질 수 있는 것 아니냐"며 우려했다.

여기까지만 보면 한은의 구조조정 방식은 최근 울산.서울시에서 시작한 '무능 직원 퇴출'이란 인사실험을 연상케 한다. 그러나 무늬만 같을 뿐 사실상 실효성이 거의 없다는 게 관련 업계의 시각이다. 우선 퇴출까지 기간이 너무 길고, 대상자가 나올 가능성도 거의 없다. 서울시의 퇴출제는 전체 직원의 3%를 그해에 퇴출 후보로 선정한다.

이에 비해 한은은 근무 성적이 다섯 번 연속 하위 5%에 들어야 한다. 1년에 두 번 평가하니 평가에만 2년6개월이 걸린다. 게다가 확률은 더 낮다. 5%라고 하면 20명당 1명으로 많은 것처럼 보이지만 한 사람이 다섯 번 연속으로 5% 안에 들어갈 확률은 0.00003125%, 약 320만 분의 1이다. 로또복권 당첨 확률(814만 분의 1)에 가깝다.

한은 직원은 모두 2200여 명. 퇴직 때까지 퇴출제 대상에 선정될 확률이 거의 없는 것이다.

다섯 번 연속 하위 5% 안에 들었다고 해도 휴직 등에는 노조의 동의가 필요하다. 한은 노조는 "명령휴직 조치를 내리려면 노조의 동의가 필요하다"며 "노조는 해당 직원이 자동으로 명령휴직 대상이 되는 것에 반대 입장"이라고 말했다.

게다가 한은 내부의 온정주의가 평가의 공정성이나 객관성을 가로막을 것이란 관측도 있다. 한은 관계자는 "일부 부서를 제외하면 인사고과가 100% 객관적이지 않다"며 "억울하게 나쁜 고과를 받았다며 '위기의 동료'들을 배려하는 일도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김창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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