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질 한반도 주변/가시화된 한­중 북­일수교(남북 화해시대:7)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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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걸림돌 「핵」 있지만 돌파구 연셈
「합의서」 서명에 따른 남북사이의 화해기류는 한반도와 주변 열강들과의 관계에도 상당한 변화를 불러일으킬 전망이다.
이 합의서는 서로의 실체를 인정하고,불가침의 경계선(영토)을 지정하고,불가침으로 평화공존을 제도화해 각기 기존의 우방들에 주장해온 「유일합법성」이 의미를 상실하게 됐기 때문이다.
물론 아직 이 합의서가 가시적 실천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더군다나 남한은 물론 주변국에서 가장 중요한 변수로 여기고 있는 핵문제가 미결로 남아있다. 북한이 비공식적으로 서명의사를 밝혔다고는 하나 이제까지의 행태로 볼때 앞으로의 여러 고비에서 언제 다른 구실로 번복할지도 몰라 낙관할 수만은 없는 처지다. 따라서 이 문제가 해결되기 전에는 주변국 관계에도 큰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
한­소관계는 이제 북한­소련의 관계에 못지않게 발전한 상태로 볼 수 있어 앞으로의 주목대상은 북한과 미­일과의 관계 및 한­중관계다. 이들 주변 3국과의 관계는 서로 맞물려 있어 영향을 주고받게돼 있다.
이중 가장 빠른 진척을 보일 수 있는 것은 북한­일본관계다. 북한은 이번 고위급회담에서 매우 전향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이 일본과의 수교를 위해서라는 분석이 나올 정도로 적극적인 접근을 하고 있다.
북한은 소련의 원조가 끊어지고,동구권 경제블록이 붕괴되었으며,이제 중국마저 북한에 경화결제를 요구하고 있어 일본의 지원에서 활로를 찾을 수 밖에 없게 됐다.
정부 관계자들은 한국의 제동이 없더라도 보상문제등이 걸려있는 만큼 쉽사리 수교교섭이 타결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미국이 국제적인 의무사항이 아닌 핵재처리시설의 포기를 북한에 강력히 요구하고,일본등 우방의 압력을 지렛대로 삼고 있어 수교전망이 밝지만은 않다. 결국 북한의 핵사찰수용 결과가 일­북한수교에 결정적인 변수로 작용할 것이 틀림없다.
일­북한수교문제와 거의 맞물려 움직이는 것이 한­중수교다. 한­중관계 개선에는 양측 모두 원칙적인 의견의 일치를 보고 있다. 어느쪽도 특별한 전제조건같은 것을 제시하지는 않고 있다. 그러나 중국문제 전문가들은 대체로 ▲남북관계의 진전등 지역정세의 안정과 ▲북한­일본관계와의 병행추진 등이 중국측의 복안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이미 한­소수교로 남북한과 주변 4강관계에 균형은 허물어지고 있어 최소한 북한과 일본의 수교를 시기적으로 앞세우지 않으면 북한을 너무 고립시키게 된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내년 1월 일본의 와타나베(도변미지웅) 외상이 중국을 방문하는 것은 이런 점에서 여러가지로 중요한 전환점이 될 가능성이 높다. 양국의 이해가 일치된다면 이들과 남북한의 관계개선이 교환될 수 있기 때문이다.
외무부 실무자들은 한­중수교의 시간표를 길게 잡고 있다. 이미 한국이 북방정책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은 거의 다 얻은 상태이고,중국과의 관계도 정치적인 의미를 배제한다면 불편할 것이 없다는 논리다. 오히려 중국이 더 필요로 한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남북합의서」에 따른 남북화해의 기운을 타고 조기수교설이 제기되고 있다. 여기에 소련의 몰락이후 북방정책의 축은 중국으로 옮겨야한다는 현실적인 인식도 맞물려 있다. 여기에는 국내정치일정을 고려한 정치적인 배려도 짙게 깔려있는 것이 아니냐는 추측도 있다.
북한­일본이나 한­중관계에 비한다면 북한­미국관계는 아직도 먼 이야기다.
미국은 일단 북한이 핵안전협정에 서명하면 북경의 참사관급 미­북한 접촉을 뉴욕으로 옮기고 대사급으로 올리는 방안을 선물로 검토하고 있지만 그것이 바로 미­북한관계 개선으로 이어지진 않을 것이다.
특히 이번 합의서에서는 당사자간 해결원칙이 강조됨으로써 남북문제 해결의 틀이 마련됐다는 점이 중요하게 지적되고 있다. 북한이 해결과정에 미국을 끌어들이는 고리로 이용해온 정전협정문제에서 「남북사이」라는 규정적 문구의 삽입을 수용한 것이다. 물론 「협정」이라고 분명한 표현을 하지않은 점이 북한으로 하여금 다시 문제를 제기할 구실이 될 수도 있지만 기본틀이 바뀌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더군다나 양측은 각종 위원회를 구성해 문제해결의 제도화까지 규정해 놓았다.
이렇게 한반도문제를 우리 민족이 주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는데서도 이번 합의서 서명은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김진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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