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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느낌!] 평행 남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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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면

브레이크 업

감독:페이턴 리드

출연:빈스 본.제니퍼 애니스턴

장르:로맨틱 코미디

등급:15세

20자 평:화성 남자와 금성 여자, 그 영원한 평행선의 변주곡

관광가이드 남자(빈스 본)와 미술관 큐레이터 여자(제니퍼 애니스턴)가 싸운다. 이유? 정말 사소하다. 여자가 남자에게 레몬을 12개 사오라고 했는데 남자는 고작 3개만 달랑 들고 왔다. 양가 친척을 초대한 여자. 레몬으로 식탁을 맛있게 장식하고 싶었다. 남자, 정말 쓸모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먹으면 그만인 것으로 공연히 소란 떠는 여자를 이해할 수 없었다. 남자는 실리파 '입'을 택했고, 여자는 감성파 '눈'을 앞세웠다.

파국이 시작됐다. 한판 전쟁이 일어난다. 손님이 돌아간 자리. 설거지 거리가 잔뜩 쌓였다. 여자, 도움을 청한다. 남자, 정말 간이 배 밖으로 튀어나왔다. 자동차 게임에만 몰두한다.

드디어 불꽃이 튄다. 이제부턴 완전 신파다. 여자, 날 위해 한 게 뭐냐고 따진다. 남자, 당신 위해 열심히 벌었다. 제발 나 좀 가만히 두라며 맞받아친다. 여자가 한마디 던진다. "우리, 헤어져."

최근 출간된 '난 타잔, 넌 제인'에서 남과 여는 대화가 불가능한 존재처럼 묘사된다. 남자가 여자에게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이 "우리 관계에 대해 이야기 좀 해"란다. 영화 속의 여인도 그렇다. "우리가 함께 한 게 뭐냐"고 묻는다. 남자, 당황한다. 그러면 지금까지 해 온 건 다, 뭐야, 도대체.

'브레이크 업:이별후애(愛)'는 제목 그대로 이별 후의 남녀를 부각한다. 제목의 '애(愛)'에 현혹되지 마시라. 로맨틱 코미디의 필승 전략인 새콤달콤 사랑담이 없다. 오랜 갈등 끝에 찾아오는 해피 엔딩도 없다. 남자와 여자는 전투에 나간 군인처럼 사사건건 충돌한다. 남자와 여자의 차이를 계속해 보여준다.

제작진은 수많은 커플을 인터뷰해 시나리오를 완성했다고 한다. 그래서 에피소드 하나하나가 사실적이다.

남녀는 이별 선언 후에도 같은 집에 산다. 집이 공동 소유로 돼 있기 때문. 남자, 평생 소원이었던 당구대를 거실에 설치한다. 여자, 잘생긴 젊은 남자를 데려와 집에 있는 남자를 자극한다. 상대 집안 헐뜯기도 빠질 수 없다. 전선(戰線)이 그들 자신을 넘어 친척까지 확대된다. 영화 막바지 남자가 회개해 여자에게 손을 내밀지만 이미 엎어진 물을 주워 담는 그릇이 없다. 애매한 화해보다 '쿨'한 작별을 선택한 것이다.

영화는 줄곧 '화성 남자'와 '금성 여자'에 방점을 찍는다. 오해는 더 큰 오해를 부르고, 싸움은 더 큰 싸움으로 번진다. '마주 보기' 사랑은 쉬워도 '한데 보기' 사랑은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보여준다. 그런데 한국과 미국의 문화적 차이 때문일까. 영화 초반부터 끝까지 줄줄이 이어지는 그들의 '격돌'에 웃음이 터지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점차 지겨워진다. 차이를 위한 차이를 지나치게 강조했다고나 할까. 약간의 인내심이 필요하다. 시트콤이라면 또 모르겠지만.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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