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노래자랑」의 자랑/김주영(시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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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일요일의 낮시간,시청자들을 텔리비전 수상기앞에 묶어두는 프로그램중에 『전국노래자랑」이란 것이 있다. 이 프로그램은 생겨난 이래 수많은 사회자를 교체하면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들의 입에 회자될만큼 시청률을 유지하고 있는 인기도 높은 장수프로이기도 하다.
이 프로그램이 방송될 때마다 보고 느끼는 것이지만 처음부터 지금까지 제작되고 있는 그곳 현지주민들의 참여도는 그 열기가 조금도 수그러들줄 모른다. 어떤 국회의원은 이 프로그램의 제작진을 자신의 선거구에 유치하기 위해 방송국에 연줄을 달고 또한 지역주민들의 구미에 맞는 기성가수들을 동원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것은 물론이고,그 가수들을 모시고 지역구까지 내려가 뒷수습까지 도맡아야 할 형편이라고 들었다.
○인기높은 장수프로
국회의원이 전국 노래자랑이란 텔리비전 프로그램의 섭외까지 참여해서 동분서주해야 하는 딱한 처지를 볼멘 소리로 하소연하는 것도 역시 직접 들었다. 그만큼 이 프로그램의 인기도는 절대적이다.
또한 그 제작의 방향도 세월이 지나면서 많은 변모를 겪었다. 가장 큰 변화중의 한가지는 이 프로그램의 주된 목적은 가수가 될 그릇을 가진 신인을 발굴하고 현지인의 위문이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제작방향에 전환이 왔다. 직업가수가 될 의향을 갖지 않았더라도 노래를 구성지게 부를 수 있는 기량만 가졌다면 80노인이라 한들 무대출연에 조금도 구애받지 않는다. 공무원이든,선술집 안주인이든,10대의 아가씨든,혹은 시쳇말로 마을 건달이든 그 기량만 충족되었으면 누구든 출연에 거리낌당하지 않는다.
또 한가지 변화는 그 지방의 특산품들이 반드시 한두가지씩 소개되고,음식물일 경우,사회자가 몸소 그 맛을 보아주는 아량을 보이기도 한다. 그 사회자는 출연자에 따라 혹은 존대말을 쓰거나 반말까지 써서 출연자를 어색하지 않게 유도하고 구속하고 직설적인 유머로 바닥인생의 넉살을 유감없이 추출하는 흡인력을 갖고 있다. 네번째의 변화는 바로 아마추어리즘의 역설적인 일대전환이다.
○기관장들도 한 곡조
여기에 출연하고 있는 아마추어들의 무대 매너는 어떤 프로들보다 프로답다. 그것이 설령 모방에 불과한 것이라 할지라도 한 곡의 노래를 부르기 위해 무대의상에 필요한 지출에 결코 인색하지 않았다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자신이 익힌 포즈를 뽐내기나 과시하는데 한점 쑥스러움이나 꺼림칙함을 두지 않는다.
그러나 또다른 변화가 있다. 그 지방에 소속되고 있는 관장들이 무대에 출연해 그 지방자랑에 소홀하지 않고,또한 한 곡의 노래까지도 선사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우리 공무원들은 편견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그런 무대에 나서서 유행가를 부르게 되면 체면이 손상되고 권위가 훼손당하는 것으로 생각해왔던 게 사실이다. 이런 분들이 이른바 권위주의와 권위라는 말의 진솔한 의미를 파악하기 시작한 탓인지 요즘와선 무대에 올라 한 곡씩 선사하기에 이르렀다.
이른바 우리의 대중문화,혹은 놀이마당의 의미가 텔리비전이라는 매체를 통해 서민들의 가슴속으로 진지하게 녹아들고 대중문화의 실체를 올바르게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조짐들은 매우 다행스런 일이다. 그리고 그러한 것을 통해 오늘날의 시류와 세태가 어디로 흐르고 있는가를 감지할 수 있는 반면,또한 대중문화의 확산력이 우리의 실생활에 미쳐 무엇을 가르쳐주고 있는가를 섬뜩한 기분으로 일깨워준다.
유행한지 보름도 안되는 유행가를 산골에 살고 있는 일개 필부가 멋들어지게 부르는 것을 보고,그리고 어떤 특정가수의 몸짓이나 율동을 어떻게 저토록 완벽하게 모방할 수 있는 것이며 또한 아마추어서의 쑥스러움에서 수월하게 탈출할 수 있는 것일까.
이처럼 대중문화의 확산력이 어디까지 가있고 또한 시간성이나 지역성의 논의자체가 쑥스러울만큼 빠른 속도로 우리생활을 지배하고 있는 것인가를 느끼게 된다면 우리는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대중문화라해서,불특정다수가 공유하고 있는 문화라해서 저질의 것으로 백안시하거나 그 창작이나 제작의 밀도감에 소홀함이 있어선 안된다는 자책을 곱씹게 된다.
○애환담긴 대중문화
대중문화가 끝끝내 말초신경이나 자극하는 문자그대로의 저질 오락으로만 전락하지 않도록 호흡을 가다듬어야 한다. 대중의 문화에는 애환이 있다. 그 애환을 한마당에서 같이 나누는 시대적 요구가 전국노래자랑이란 무대에는 역력하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의 관청에서는 지난시대의 유물인 권위주의가 어엿하게 자리잡고 있다는 것을 눈여겨 보게 된다. 이제 그것을 갖고 있다는 것이 명예가 아니란 것을 깨닫고 있는 사람들의 수효도 불어나고 있다는 것 역시 그 프로그램을 통해 농도감있게 느끼게 된다. 사회가 잘되려면 이런 놀이마당이 많아야 하고 또한 그 참여에도 인색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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