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빨라질 북의 선택/사라진 핵사찰 거부 명분(남북 화해시대:6)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핵부재선언으로 북요구 충족/비핵화 공동선언땐 「합의서」도 순항
남북 합의서 채택과 이에 뒤이은 핵부재선언으로 북한의 대응이 크게 주목을 끌고 있다.
우선 관건이 되고 있는 핵문제에 대해 북한은 26일 개최되는 판문점 대표접촉에서 핵사찰 수용 및 재처리시설 폐기여부 등에 관한 구체적인 입장을 밝힐 것으로 보인다.
시기적으로는 다소 완급이 있더라도 빠른 시일안에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의한 핵사찰 수용은 확실시 된다.
노대통령의 이번 선언으로 그동안 북한이 내세웠던 핵사찰 수용조건의 핵심이었던 주한 미군 핵무기 철수가 명실상부하게 충족됐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다소 시간적인 오차는 있을지 모르나 연내 핵안전협정 서명→내년 1월말 사찰수용의 수순을 밟을 것으로 보인다.
또하나 확실시되는 점은 북한이 대표접촉에서 일단 비핵지대화(비핵화와는 달리 핵무기의 반입도 금지)를 제기하리라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이 끝까지 비핵지대화를 고수하지는 않으리라는게 당국자들의 지배적인 관측이다.
한 고위회담 대표는 『비핵지대화는 기본적으로 핵보유국들간에 다루어지는 사항이라는 점을 북측에 주지시키면 북측도 이해할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이같은 측면에서 볼때 앞으로 북한이 핵문제에 대해 취할 수 있는 선택은 우리의 비핵화 공동선언을 수용할 것이냐와 재처리시설의 폐기여부에 따라 결정되며 이는 몇가지 형태로 정리될 수 있다.
첫번째는 핵사찰은 받겠으나 재처리시설은 폐기하지 않겠다고 나서는 것이다.
재처리시설 폐기는 IAEA 규정상 의무사항이 이날 뿐더러 앞으로 경제적인 목적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하면 되지 않느냐고 주장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이 경우 북한은 최대 정책목표인 대일수교나 대미 관계개선을 지연시켜야 하는 부담을 갖게 된다.
두번째는 우리의 비핵화공동선언을 수용하는 것이다.
시기적으로는 노대통령이 이번 선언을 통해 추구한 연내수용을 택할 수도 있고,어느 정도 협의과정을 거친 후 결정할 수도 있다.
특히 어느 정도 협의과정을 거친 후 받아들일 경우에는 이를 정상회담에서 채택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세번째는 비핵화 공동선언에는 응하지 않되 별도의 방식으로 재처리시설 폐기를 천명하는 것이다.
우선 외교부 성명이나 고위 당국자의 언급을 통해 하는 방법을 고려할 수 있다.
또다른 방안으로는 『IAEA의 핵사찰을 받는이상 핵재처리시설을 이용,핵무기를 제조하기는 어렵다』는 점을 우리측에 설득시키는 것이다.
이같은 가능성중에서 북한이 어떤 것을 선택하느냐는 핵카드의 효용성에 대한 판단 등에 따라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즉 지금까지 핵카드로 충분히 얻을만큼 얻었다고 판단하면 두번째나 세번째를 택하고,좀더 핵카드를 활용해야겠다고 결정했다면 첫번째 선택을 할 가능성이 있다.
특히 5차 서울회담에서 남측과 내막적으로 얘기가 잘됐다면 두번째 선택을 할 가능성이 높다.
이처럼 북한이 핵문제에 대한 선택을 서둘러 취하는 것은 그것이 합의서 이행의 양상과 연계돼 있기 때문이다.
남북간에 비핵화 공동선언에 합의할 경우나 북한이 어떤 식으로든지 재처리시설의 폐기방침을 밝히면 합의서 이행도 상당히 순조롭게 이루어질 것으로 관측된다.
물론 군사적 신뢰구축 및 군축,평화상태 전환 등 「고감도 사항」에 대해선 논란이 벌어질 것이다.
그러나 경제교류·협력,상호비방 중지 등 다른 분야에서는 큰 진전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북측은 이산가족문제,남측은 국가보안법 문제등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볼 수 있는」분야에서 적극적으로 나올 공산이 크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주목되는 것은 정상회담 개최문제다.
북한이 연내나 내년 1월중으로 비핵화공동선언에 응해오면 정상회담은 2월말의 6차 고위급회담 이후 그리 늦지 않은 시일내에 열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와 관련,노대통령이 18일의 기자간담회에서 『정상회담이 빨라질 것』이라고 언급한 대목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보여진다.
문제는 북한이 개방의 폭을 어느 정도로 할 것이냐는 점이다.
북한이 핵문제의 해결이나 합의와 타결로 이뤄진 남북관계 개선을 대미·대일 관계개선이나 중국과의 유대강화 목적에만 이용한다면 남북간의 교류폭은 제한적이고 점진적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북한이 남쪽과의 경협등에 큰 비중을 둔다면 남북간의 협력은 급진전될 수도 있을 것이다.<안희창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