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이트로는 한계 … 심리학 출구는 영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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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사진=김태성 기자]

지난 12일 서울 강남구 개포동의 서울체신청 강당. '내 안의 보물을 찾아라'란 제목으로 강연이 열렸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이진구(63.사진) 박사가 청중에게 물음을 던졌다. "당신은 누구입니까? 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갑니까?" 답변은 제각각이었다. "체신청 직원입니다"부터 "○○○ 엄마인데요"까지. 이 박사는 "이렇게 답변하는 '나'는 '진짜 나'가 아니다"고 말했다.

무슨 선문답이라도 주고 받는 걸까. 그런데 이 박사는 천주교 신자다. 게다가 임상 심리학을 전공했다. 미국 시카고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 플로리다대에서 심리학 박사 학위를 받고 펜실베니아 주립대학에서 10년 넘게 연구교수로 일했던 심리학자다.

그는 숱한 심리 상담을 겪었다. 그리고 숱하게 절망했다. "상담자의 의식 깊숙이, 바닥(무의식)까지 내려가야 하는데 안되더군요. 그게 프로이트와 융 심리학의 한계죠. 에고(자아)에 관한 얘기만 하거든요."

그래서 그는 새로운 '깃발'을 들었다. 바로 '영성(Spirituality)'에 무게를 둔 초월(영성) 심리학이다. '거짓 에고'를 넘은 자리, 거기에 '참 에고'가 있다고 했다. 사회 속에서 배운 대로 말하고 행동하는 '나'는 '거짓 나'란 지적이다.

어찌 보면 물과 기름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영성과 일일이 짚고 가는 학문 영역인 심리학, 그 둘이 어떻게 어깨동무를 할 수 있을까. 그런데 이 박사의 설명은 뜻밖이다.

"미국에선 요즘 초월 심리학 바람이 거셉니다. 수백 년 내려오던 프로테스탄트 교회의 전통에 사람들이 한계를 느낀 거죠. 그래서 기존 종교질서를 허물지 않으면서도 새로운 대안을 찾습니다. 그래서 몰아친 게 명상 열풍입니다. 물론 달라이 라마를 통한 티벳 불교가 기름 붓는 역할을 했지요."

초월 심리학도 같은 맥락이다. 나와 신의 관계, 나와 우주의 관계에서 '참 에고'를 찾기 때문이다.

이 박사는 성경 얘기를 꺼냈다. 시편 82편 6절의 '내가 말하기를 너희는 신들이며 다 지존자의 아들들이라'는 구절이었다. "이 얼마나 신나는 얘기인가요. 신의 자식이니 신이 된다는 거죠. 모두가 존귀하고 사랑스러운 존재란 겁니다. 이게 우리 안의 영성입니다. 초월 심리학의 지향점도 여기죠. 그곳이 인간의 고향이고, 심리학이 가야할 종점인 거죠."

그래도 궁금점은 남는다. 철학적 접근이 본질을 가리킬 순 있어도, 본질에 닿게 하진 못한다. 초월 심리학도 학문이니 마찬가지 아닌가.

"물론입니다. 학문만으로는 '진짜 나'를 만날 순 없죠. 그래서 도구(Tool)가 중요합니다. 신을 만나러 가는 통로가 필요하죠. 그래서 명상이나 기도, 참선 등이 동반돼야 합니다. 그러나 나의 가족, 나의 욕심만을 위한 기도로는 통로를 만들지 못합니다. 나를 버리는 기도, 그 자리에 통로가 생기죠. 그 너머에 신이 있고, '참 에고'가 있거든요."

이 박사는 또 한번 성경 구절을 읊었다.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내게로 오는 것이 아니라, 내 뜻대로 사는 자가 내게로 온다고 했습니다."

그는 21세기를 '비전의 시대'라고 했다. "비전은 창조에서 나옵니다. 창조의 발판은 지혜죠. 그 지혜의 창고가 바로 영성입니다. 틀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움이 영성의 속성이거든요. 영성이 21세기에 반드시 필요한 까닭입니다."

글=백성호 기자 <vangogh@joongang.co.kr>
사진=김태성 기자 <ts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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