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유럽,블록화 지양해야(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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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20세기를 지탱해온 소련이 퇴조하면서 다음 세기를 지탱해줄 새로운 세력으로서 유럽이 떠오르고 있다. 유럽공동체(EC) 12개국이 통합조약을 마무리함으로써 거대한 정치·경제세력을 형성하는 길로 들어서게 된 것이다.
소련 해체의 진통과 EC의 통합결정이라는 대작업이 시기적으로 함께 이루어지고 있는 것도 새로운 국제질서 태동과 관련해서도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통합을 지향하는 유럽국가들의 목표가 뜻대로 이루어지기만 한다면 앞으로 10년을 전후하여 유럽은 세계최대의 경제 단위로 부상하게 된다. 그러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정치공동체로서의 기능까지 갖추게 된다면 국제질서를 좌우하는 거대한 세력으로 성장하게 될 것이다.
통합의 이상대로 진행된다면 EC회원국뿐 아니라 옛 동구권을 포함한 유럽의 모든 나라가 참여하는 공산주의 몰락이후 최대의 정치·경제세력으로 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이상을 실현하기에는 아직 극복해야 할 점이 많은 것 같다. 최종목표는 결정했지만 그에 이르는 과정에서 아직 모든 나라의 이해관계가 일치하고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목표는 주권의 대부분을 통합유럽에 위임하는 대연방형태를 지향하고 있으나 언제 실현될 것인가를 예상하기는 어려운 형편이다.
EC국가들은 걸프전이나 유고에 대한 대응,소련에 대한 지원문제등에서 드러났듯이 공동행동에 합의할 수 없었다. 그런 문제에서 의견이 엇갈린 나라들이 주권을 포기하는 연방형태까지 가려면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선 경제통합을 위한 시한을 못박아 구속력 가진 문서를 만들어 냄으로써 거대한 경제공동체의 탄생은 확실해졌다. 따라서 통합된 유럽의 경제동향과 대외적인 경제정책은 국제무역에서 중요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아울러 유럽의 경제통합은 한편으로는 국제화가 가속되는 것을 의미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국제적인 파벌화의 의미도 지닌다. 국가간의 관계형성이 냉전시대의 구질서에 비해 훨씬 다양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경제의 블록화로 불리는 파벌화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선진기술과 높은 문화수준을 지닌 유럽국가들끼리만 뭉친다는 것은 제3자,특히 유럽에 비해 낮은 수준의 역외국가들 입장에서 보자면 계속 과학기술등 수준차이를 벌려 무역장벽을 높일 가능성도 있다.
더구나 앞으로 우리의 생활은 모든 문제를 세계적인 기반에서만 해결해야 할 추세로 가고 있다. 경제관계뿐 아니라 환경문제,사회문제,핵문제등 어느 것 할 것없이 협력해 나가야 할 때다.
통합유럽이 주역을 맡은 새로운 세계질서도 물론 그러한 기반위에 서야한다. EC의 탄생이후 지금까지의 발전과정으로 보아 통합유럽의 장래역할이 순기능이 많으리라 기대한다. 단순한 블록화가 아닌,배타적이 아니고 포용적인,보호주의적이 아니고 개방적인 정책을 펴는 통합유럽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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