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르바초프의 퇴장(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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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미국의 언론들은 고르바초프의 정치스타일을 곧잘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과 비교하곤 했다.
루스벨트가 국회를 거치지 않고 직접 라디오를 통해 가정에 있는 국민들에게 「노변담화」로 접촉한 것과 같이 고르바초프는 텔리비전을 정치무기로 사용한 최초의 소련지도자였다. 그는 마치 정력이 넘쳐흐르는 지방의 정치보스처럼 여러곳을 돌아다니며 사람들과 얼굴을 맞대고 그들의 불평을 들어주었다.
루스벨트가 1930년대 대공황으로부터 자본주의를 구해내려 했을 때,또 1941년 일본으로부터 진주만기습을 받았을때도 그는 정책목적을 엄격하게 따지려들지 않았다. 먼저 정책을 시행하고 그 결과에 대한 검토를 통해 수정해 나가는 것이 루스벨트의 정치스타일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대부분 정치적으로 성공을 거두었다.
고르바초프가 폐쇄된 소련의 공산주의 사회를 개혁과 개방을 통해 구제하려고 했을때 그는 주저없이 앞으로 밀어붙이는 정책으로 일관했다. 베를린장벽을 무너뜨리고 동구를 춥고 긴 겨울잠에서 깨어나게 한 것이 바로 그런 스타일이다.
그러나 미국역사에서 공황이나 태평양전쟁은 짧은 시기에 불과했지만 소련에 있어서의 공산주의 역사는 72년이란 세월의 이끼가 낀 것이었다. 그는 베를린 장벽을 허무는데 성공했지만 그 두꺼운 역사의 벽을 허무는데는 시련을 겪고 있다.
외신을 보면 지난 8일에 있은 러시아등 3개 슬라브계 공화국의 「독립국가공동체」결성선언 이후 고르바초프의 입지는 매우 난처해진 모양이다. 그는 이 공동체 결성을 쿠데타라고 비난하면서 연방의 존속을 위한 인민대표회를 요구하고 있지만 그 요구가 받아들여질 것 같지가 않다. 그렇다면 고르바초프의 사임은 불을 보듯 뻔한 것이다.
지난해 1월1일자 타임지는 「이해의 인물」로 고르바초프를 선정하면서 그를 동서의 냉전을 눈 깜짝할 사이에 종식시킨 마술사,아니 슈퍼스타라고 평가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세계의 역사에서 코페르니쿠스와 다윈·프로이트의 세가지를 함께 묶은 것과 같은 일을 했다고 극찬의 말도했다. 그 고르바초프의 시대가 끝나가고 있다. 비정한 정치의 세계에서 살아남는 도를 터득한 일종의 복의 천재이며,타격을 피해 옆으로 한발 비키면서 춤출줄아는 민첩한 연기자이고,현실에 과한 흥행사이자 조종자이며,부드러운 늑대 조련사라는 평을 들은 관르바초프. 그는 정말 역사의 무대에서 영영 퇴장하고마는 것인가.<손기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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