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즈 노이로제(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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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의학에서 「질병공포」(Nosophobia)라고 부르는 것이 있다. 일종의 노이로제 증상인데,우리가 흔히 노이로제라고 부르는 것이 스트레스나 심적 충격에 의한 가벼운 정신질환이라면 질병공포는 그 자체가 병이 아니라 늘 「내가 병에 걸려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에 빠져 있는 불안하고 초조한 심리상태를 뜻한다.
질병공포에 빠져 있는 사람들은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의사의 진단에도 불구하고 이병원 저병원 찾아다니며 없는 병을 찾아내려고 애쓰는 이상한 심리를 보인다. 그 질병공포가 더욱 심화되면 죽음에 대한 공포속에 휩쓸리게 된다고 한다.
현대의학에서 질병공포의 전형적인 예는 암노이로제로 꼽혀왔다. 암환자가 급격하게 증가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혹시 나도 암에 걸려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공포에 휩싸여 암전문병원이 한동안 성시를 이뤘다는 것이다.
에이즈,즉 후천성면역결핍증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등장하면서 질병공포의 새로운 유형으로 떠오른 것이 에이즈 노이로제다. 일명 에이즈공포증후군(AIDS panic syndrome)이라 불리기도 하는 에이즈 노이로제는 에이즈의 확산과 함께 또다른 사회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특히 에이즈의 천국으로 꼽히는 미국은 에이즈 노이로제가 일상생활 깊숙이까지 파고들어 동성애는 물론 이성교제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이다. 에이즈에 관한 지식·정보의 보급이 진전되면 될수록 감염·발병 가능성에 대한 불안이나 공포는 더욱 확산되고 있다니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닌 모양이다. 한동안 암발병 여부를 확인하려는 사람들이 병원마다 수없이 몰려든다고 하더니 최근에는 은밀하기는 하지만 에이즈 감염여부를 묻는 사람들이 심심치 않게 병원을 드나든다는 것이다.
그같은 현상은 보건당국의 에이즈대책에도 책임의 일단이 있을 것 같다. 일부 보도에 따르면 에이즈 1차검사에서 양성반응을 보이는 사람은 해마다 2천여명에 이르고 있으나 2차검사결과 감염자로 최종 확인된 사람은 85년 이후 모두 1백67명뿐인데도 이상반응을 보인 사람까지 감염자로 잘못 보도되는 통에 에이즈공포를 부추긴다는 것이다.
최근 『웅진여성』의 「에이즈 복수극」기사파문도 보기에 따라서는 에이즈 노이로제와 무관하지 않을성 싶다. 여성지의 상업주의가 에이즈 노이로제현상에 편승한 것이라고나 할까.<정규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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