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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확인않고 기사작성/「에이즈복수극」 어떻게 썼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2면

◎「소문」을 「사실」로 표현/마감일쫓기자 사진믿고 보도/사자명예훼손 해석따라 처벌
월간 『웅진여성』 12월호에 게재된 「에이즈 복수극」은 출판사측이 르포라이터 이상규씨(32)가 건네준 일기장과 사진만을 근거로 사실확인과정을 생략한채 쓴 픽션으로 밝혀졌다.
이에 따라 「에이즈 복수극」의 진위여부에 대한 검찰수사는 문제의 이씨와 『웅진여성』발행인 유건수씨·편집인 이광표씨등이 9일 검찰에 자진출두함에 따라 이씨가 어떻게 일기장과 사진을 구했느냐와 기사에서 거론된 인물들에 대한 명예훼손죄의 처벌대상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검찰에 따르면 7일 오후 출두한 『웅진여성』기자 조금현씨(32)는 『문제의 기사는 이씨가 건네준 김모양의 사진·일기장과 보충설명을 근거로 작성한 것』이며 『다만 보충취재를 통해 이씨가 준 자료의 사실여부를 확인해보지 못한 것은 실수』라고 진술했다는 것이다.
조씨의 이같은 주장은 물론 이씨에 대한 조사가 끝나야 진위여부를 최종 확인할 수 있지만 『웅진여성』관계자들 주장대로라면 이씨가 적극적으로 조씨등 『웅진여성』제작 관계자들을 속였을 가능성도 있다.
편집인 이광표씨는 검찰출두에 앞서 본사기자와의 통화에서 『당초 12월호 머리기사는 정일권 전총리관련이었으나 제작마감일(11월24일)을 며칠앞두고 조기자가 「이씨가 에이즈에 걸린뒤 복수극을 벌인 여성의 일기장과 사진을 갖고있다」고 해 이를 사실로 믿고 그대로 보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편집인 이씨는 또 『르포라이터 이씨는 11월초에도 탤런트 강문영양 관련기사를 직접 쓴 대가로 원고료 40만원을 받아갔으며 이번 기사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면 이가 걸맞은 자료제공 대가가 지불되게 되어있었다』고 밝히고 마감날짜가 임박했기 때문에 이씨가 제공한 기사재료를 사실로 믿고 그대로 기사화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웅진여성」관계자들은 또 조씨가 『문제의 기사취재와 일기장입수는 본인이 직접 한 것』이라는 자인서를 이상규씨에게 써준 것은 검찰출두를 앞두고 이씨가 갖고 있는 일기장 원문을 받아내기위해 이씨가 요구하는대로 자인서를 쓴것이라고 해명했다.
검찰은 이처럼 『웅진여성』측과 이상규씨가 일기장입수 및 취재에 대해 상반된 주장을 함에 따라 일기장의 필적감정을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의뢰하는 한편 9일 오후 조·이 두사람의 대질신문을 통해 사실을 가릴 방침이다.
◇형사처벌=검찰의 이번 수사는 당초 기사의 사실여부 확인에 초점이 모아졌으나 이처럼 명백한 허구로 드러난 이상 관련자에 대한 형사처벌이 불가피하다는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일반적으로 이번 『웅진여성』처럼 출판물에 의해 타인의 명예를 훼손했을 경우 적용가능한 처벌조항은 피해 대상자가 살아있는 인물이냐,죽었느냐에 따라 「출판물등에 의한 명예훼손」과 「사자의 명예훼손」등 2가지.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은 다른 사람의 명예를 훼손할 목적으로 허위든 사실이든 보도를 했을 경우에 해당되므로 수사기관이 피해자 고소·고발없이도 형사처벌을 할 수 있으나 피해자가 적극적으로 처벌을 원치 않을 때는 처벌할 수 없도록 되어있다(반의사 불벌죄).
또 「사자의 명예훼손」은 이미 숨진 사람에 대해 허위사실을 적시했을때 유가족 등의 고소가 있어야 처벌이 가능한 친고죄다.
그러나 이번 『웅진여성』기사의 경우 숨진 김모양이 장관·국회의원등 유력인사 40여명과 관계를 맺은것으로 보도했지만 실제이름을 모두 밝히지 않아 일반인들이 기사내용에서 실제인물을 찾아낼 수 있는 사람은 숨진 전정무장관 김동영 의원에 불과하다는게 검찰의 분석이다.
고김의원의 경우 9일 오전 가족들이 『웅진여성』관계자들을 이미 고소함으로써 허위사실로 밝혀질 경우 사자에 대한 명예훼손이 명백하기 때문에 관련자들의 형사처벌이 불가피하다고 밝히고 있다.
검찰은 기사게재의 최종책임자인 이광표씨의 경우 조기자의 기사를 확실한 사실로 믿고 이를 게재한 것으로 밝혀지면 형사처벌을 할 수 없고 발행인 유건수씨도 기사게재에 개입하지 않았다면 형사처벌 대상에서 제외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사자의 명예훼손」이 인정될 경우 조·이 두사람의 사법처리는 확실해지지만 이광표씨의 경우 기사내용을 어느정도 믿었느냐는 수사결과에 따라 처벌여부가 정해지게 된다.
이와 함께 검찰은 이상규씨가 일기장등을 제공하고 그대가를 받기로 『웅진여성』측과 사전 약정을 한 사실이 드러나면 사기죄로 처벌이 가능하나 대가지급이 일종의 관행일 경우에는 사기죄적용은 어려울 것으로 보고있다.<이상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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