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반미벽화 공방/붉은기 들고 성조기 찢는 『결전의 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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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시대착오적 그림”“순수한 예술작품”/“내용수정 안하면 철거”/학교측/“절대불가” 강력히 반발/학생들
『선동적·시대착오적 그림으로 지워버려야 한다.』
『민족 자주성을 일깨우는 예술품으로 결단코 사수하겠다.』
서울대구내에 학생들이 그려놓은 대형 반미벽화를 놓고 지워없애겠다는 학교측과 지키겠다는 학생들간의 공방이 치열하다.
문제의 벽그림은 학생회관 1층 출입문의 위쪽 콘크리트벽에 세로 3.5m,가로 9.5m 크기로 그려진 「결전의 날」이라는 초대형 그림으로 청년들이 붉은기를 들고 성조기를 찢고 있는 모습.
88년 10월 「미대 벽그림 모임」이 삭막한 캠퍼스공간을 자주적 미술문화로 꾸민다는 취지로 제작했으나 올여름방학중 학교측이 환경미화를 한다며 페인트로 지워버리자 학생들이 지난 9월 그림을 수정해 다시 복원한 것.
서양화·산업디자인학과 등 5개학과 20명의 학생들이 대형 비계를 설치하고 2주일에 걸쳐 재완성한뒤 총학생회의 2학기 출범식에 맞춰 제막식을 가졌었다.
그러나 그림이 완성된후 성조기를 찢고 붉은기를 들고 있는 내용에 대한 학내외 항의가 빗발쳤다는게 학교측 주장.
일부 교수들은 『그림의 내용이 명백히 좌경용공적 「색채」를 띠고 있음에도 학교측이 학생들의 눈치보기에만 급급,모른체하고 있다』고 거센 비난까지 퍼붓고 있다.
또 일부 동창들도 「외국인들에게 어떻게 비쳐질지 걱정스럽다」「보기만 해도 섬뜩하다」는 등의 항의편지를 학교측에 잇따라 보내왔다.
심지어 한 교수는 TV토론회에 나가 벽그림에 대해 신랄한 질타를 하기도 했다.
이와 함께 교육부·미 대사관측과 일부 반공단체들도 학교측에 철거요구를 한 것으로 알려져 학교측은 철거에 나설 수 밖에 없는 입장.
학교측은 결국 학내외 여론을 모아 『벽그림 내용을 수정하지 않으면 지워버리겠다』는 공식입장을 총학생회·벽보그림모임에 통보하게 됐고 학생들은 즉각 반기를 들었다.
『벽그림 또 지워. 절대로 못지워.』
학생들은 통보를 받은 직후 총학생회·미대학생회 명의의 플래카드를 즉각 벽그림 바로밑에 내걸었다.
또 대자보등을 통해 『벽그림은 예술적 판단아래 그린 창작물일 뿐만 아니라 학우들의 숨결이 스며있는 문화재제가 됐다』고 맞섰다.
학생들은 성조기를 찢는 모습은 수입개방과 전시접수국지원협정을 강조하는 최근의 오만한 미국 태도 때문에 결코 바꿀 수 없다는 주장.
또 붉은 깃발은 전체 조화에 맞는 색조를 택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결국 전체 학생들의 의견을 묻는 설문조사가 실시됐고 68%가 수정에 반대한다는 결과가 6일 나오자 당사자인 벽그림모임과 총학생회는 7일 논의끝에 「수정불가」라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벽그림모임의 김인경양(서양화4·22)은 『관악캠퍼스 자주문화의 상징인 벽그림에 대해 어떤 수정이나 훼손에도 반대한다』며 『우리의 정성이 알알이 배인 그림을 끝까지 지켜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동진 학생처장은 『벽그림이 학생들의 예술작품이라는 점은 인정하지만 붉은기와 성조기 찢는 부분은 용납될 수 없는 분위기』라며 『인내를 가지고 학생들과 대화를 통해 자진 철거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학교와 학생측은 철거를 둘러싸고 다음주중 다시 만나 최종 결론을 내리기로 했지만 서로의 주장이 평행선이어서 결과가 주목되고 있다.<오영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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