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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 이라크전 등 외교 실패 탓 이젠 보수파가 골치 아프게 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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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역사의 흐름은 완전히 보수파 편이다. 저쪽(민주당)의 아이디어는 파산했다. 민주당은 지적 자산을 완전히 소진했다." 1985년 3월 로널드 레이건 당시 미국 대통령은 보수파의 최대 잔치인 보수주의정치행동회의(CPAC) 연례회의에서 공화당 핵심 지지자 1700여 명 앞에서 이렇게 선언했다. 압도적인 표 차이로 재선에 성공한 직후였다. 그러나 지금 미국의 정치 상황은 그 당시와는 180도 다른 상황이다. 이달 초 열린 CPAC 행사의 분위기는 암울했다. 역사는 민주당 편이며 아이디어 고갈로 골치 아픈 쪽은 공화당이다.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은 최신호에서 레이건 전 대통령이 눈물을 흘리는 합성 사진(사진 (左))을 표지에 실었다. 무덤 속의 레이건이 만일 미국 보수파의 상황을 봤다면 눈물을 흘릴 것이란 의미다.

선거 전략가의 말을 인용하자면 "공화당 대선 주자들이 공화당의 이름만 들먹거려도 지지율이 떨어질 정도"다. 보수파의 추락은 여론조사에서도 확연히 드러난다. 최근 뉴욕 타임스와 CBS가 공동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공화당원 중 40%가 내년 미 대선에서 민주당이 승리할 것으로 예상했다.

반면 공화당이 이길 것이란 비관적 전망을 한 민주당원들은 12%에 그쳤다. 타임은 그 이유를 조지 W 부시 (右) 대통령의 실정(失政) 탓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이라크전 같은 외교적 실패가 냉전에서 승리한 레이건과 극명히 대비되는 대목이다. "레이건은 백마를 타고 전쟁을 해 세계를 구하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다"고 정치 평론가 리처드 바이귀에리는 말했다. 레이건이 냉전에서 승리한 것은 전쟁을 통해서가 아니라 소련의 자체적인 파산을 유도한 결과라는 것이다.

반면 '악의 축(axis of evil)' 타도를 외치며 2003년 3월 바그다드를 공격한 부시는 이라크 사태라는 수렁에 빠져 허덕이고 있다. 이라크 사태는 종파 간, 인종 간 갈등으로 내전 상황에 빠져들고 있다. 게다가 북한 핵 문제는 아직 미해결 상태고, 이란은 핵 개발을 강행하고 있다. 이와 관련, 워싱턴 포스트는 사설에서 "외교적 노력이 실패한다고 해서 바로 전쟁을 벌이면 안 된다는 교훈을 이라크 전이 일깨워 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부시 대통령은 국내에서도 코너에 몰려 있다. 스캔들 때문이다.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 관련 정보를 왜곡해 촉발된 '리크 게이트'에 이어 최근 이라크전 부상병들을 홀대하고 부실하게 치료한 미 육군 소속 월터 리드 병원 스캔들이 터졌다. 또 법무부가 지난해 12월 연방검사 8명을 무더기 해임한 일이 정치적 공방으로 번졌다. 이 일로 민주당은 알베르토 곤살레스 법무장관의 사퇴를 요구하고 있다. 영국의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이에 대해 "부시는 그동안 과거 어느 대통령보다 삼권분립 정신을 무시하고 행정부 권한을 휘둘러 왔다"고 비판했다. 또 부시가 곤살레스 법무장관이나 딕 체니 부통령 같은 능력 없는 충성파들을 너무 싸고 돌았다고 꼬집었다.

최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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