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작품 그대로 베낀 "은밀한 온용"|올 미전 서양화대상 표절아니다" 미협발표에 미술평론가 윤범모씨 반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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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남의 사진작품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이 어떻게 「세계현대미술의 경향」「예술의 전문성」이라고 강변될 수 있는 것인가.
물론 현대미술의 다양한 경향·기법 가운데는 사진을 비롯, 여러 매재들을 활용한 경우가 많다. 특히 미국의 팝아트계열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이번 경우는 근본부터가 다르다. 그것은 바로 작가의 창의성에 관한 문제다.
올해 양화부문 대상 수상작은 일본사진집 『누드』에 수록된 프레데릭 아슈도, 파올로 지올리의 사진작품을 무자비하게(?)차용한 그림이었다.
상식적으로 보아도 두 작가의 사진작품과 수상작의 내용은 소재·구도·형상은 물론 색조·표현기법까지 유사성을 확인케 한다.
수상작품을 보자. 누드부분은 물론이고 테두리 조형의 처리, 사각형의 구획, 화면을 절단한 빛등이 꼭 같지않은가. 수상작가의 독자적인 발상법이나 창의성을 엿보기에는 무리가 많다.
심사위원회는 수상작이 창작품이라는 이유로 미술의 전문성, 세계 현대미술의 경향, 그리고 작가의 제작의도를 열거했으나 쉽게 납득할 수 없다.
수상작가는 남의 사진작품을 사용한 기법을 두고 자신의 독창적인 방법론이라고 말하고 있다. 현대미술은 팝아트나 오브제 미술등에서 다양한 방법론이 일반화되고 있어 자신의 사진을 이용한 작업방식은 보다 진일보한 조형적 체험이라고까지 주장했다.
남의 사진작품을 자신의 캔버스에 그대로 옮긴 방식 또한 자신의 독창적인 방법론이라는 것이다.
물론 현대미술 가운데 기왕의 사진작품이나 오브제를 활용해 제작하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다른 작가의 작품도 「인용」해 또 하나의 비슷한 새 작품울 추가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문제는 작가의 양식이고 독특한 시각 또는 독자적 세계관과 직결된다. 창의성이 결여된 작품은 진정한 의미의 작품이 아니다. 그것은 매체를 달리했다는 이유만으로도 면책되지 않는다.
팝 아트등 숱한 작가들이 남의 사진이나 광고 혹은 창작품을 활용한 것도 그 기저에는 작가 나름대로의 독특한 조형 논리가 뒤따르고 있다는 점이다. 기존작품을 활용할 때에는 작가 나름대로의 독창적인 조형어법이 요구된다.
독특한 시각으로의 창작적 산물인 남의 사진작품을 그대로 여과없이 모방해 놓고 현대미술의 경향 운운할수없다.
이번 문제의 수상작가는 마르셀 뒤샹이나 앤디 워홀같은 작가의 예를 들고 있는데 무엇인가 커다란 착각을 하고있는 듯하다.
대개 그렇듯이 팝 아트 작가들은 대중적으로 검증된 기존 이미지를 사용된 사진작품을 「재해석」했다. 워홀은 마릴린 먼로·엘비스. 프레슬리 같은 관용화된 대중적 도상을 복합적으로 병렬시키거나 색상을 다층적으로 변화시킴으로써 독창성을 높이평가 받았다. 이는 대중적 이미지의 변주인 것이지 결코 남의 창작세계를 은밀히 도용한 것은 아니었다 특히 워홀은 자본주의 리얼리즘 작가라든지, 소비사회에 대한 무비판적 찬양이라는 지적도 있어 갔듯이 미국적 후기 자본주의를 반영했다는 예술철학도 엿보게 했다. 대중적 이미지를 끌어들여 고급문화 영역으로 접목시켰다는 의미도 담겨있다.
뒤샹은 유명한 레오나르도다빈치 작품 『모나리자』의 사진에 수염을 붙인다든가 사진에 수염을 붙인다든가 음탕한 문구를 써넣음으로써 기존관념(지순한 여인상)에 대한 도전의 형식으로서 창작했던 것이다.
따라서 남의 작품을 있는 그대로 베낀 것은 결코 창작품이라고 볼 수 없는 것이다.
이번 『또 다른 꿈』은 외국의 사진작품을 교묘히 합성해 자신만의 창작물인 것처럼 공모전에 출품했다. 딴예술가의 작품을 쓸 때 인용했음을 밝히는 관례도 따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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