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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한국 로체샤르남벽 원정대 식량, 장비만 5t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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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푸르나(Aanapurna)호텔의 아침은 이름 모를 새가 들려주는 멜로디와 함께 시작됐다. 3월의 카트만두 하늘은 한국의 가을 날씨만큼이나 청명하다. 안나푸르나 호텔은 카트만두시 다운타운(Downtown) 한복판에 있는데, 이 도시에서 몇 안 되는 특급호텔 중 하나다. 로비를 나서면 오른편으로 카지노가 있고, 정문을 빠져나가자마자 고급 쇼핑상가로 이어진다.

호텔의 객실료는 50~100달러로 가난한 나라 네팔에서는 꿈도 꾸지 못할 만큼 비싸다. 한국대사관 직원의 말에 의하면 "네팔의 차관급 공무원의 월급이 150달러"라고 한다.

엄홍길 대장을 비롯한 18명의 대원들은 17일 오후 9시(현지시간) 여장을 풀고 네팔에서의 첫날을 맞았다. 한국의 히말라야 원정대가 특급호텔에서 자는 경우는 이례적이라고 한다. 오직 등반에만 신경 써야 하는 원정대에 좀 과분한 대우 아니냐는 생각을 하게 한다. 엄홍길 대장은 이렇게 말했다.

"대원들이 오직 등반에만 신경 쓸 수 있도록, 특히 먹고 자는 문제에서만큼은 최상의 대우를 해주는 게 나의 등반 원칙이다"

엄 대장이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계기는 아주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85년, 당시 25살이었던 엄홍길은 생애 처음으로 히말라야 원정에 참여하게 된다. 소규모 원정대로 지금과 비교하면 정말 부실하기 짝이 없는 팀이었다. 현재는 원정단장을 비롯한 지원팀이 따로 있으며, 원정대 안에서도 식량팀, 장비팀, 수송팀, 의료팀 등 체계가 잘 잡혀 있지만 당시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대장과 대원으로 나뉘어, 모든 문제를 대장이 해결했다고 한다.

먹을 것, 입을 것 모두 부족한 상태에서 등반에 나섰는데, 결국 경험과 정보가 부족해 실패하고 만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 산에서는 그나마 준비해 간대로 지냈지만, 등반 도중 식량이 떨어진 것이다. 베이스캠프에서 카트만두로 오기 위해서는 10일 이상 내려와야 하는데, 여비가 없어 각자 장비를 팔아서 끼니를 이을 수밖에 없었다.

"돈이 없어 국내선 항공을 이용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10여 일 동안 재킷 하나 팔아서 점심 먹고, 신발 하나 팔아서 저녁 먹고 그렇게 내려왔다. 우여곡절 끝에 카트만두에 왔지만, 서울로 돌아가는 비행기 티켓 말고는 가진 게 별로 없었다. 당시 2~3달러 하는 롯지에서 지냈는데, 말이 롯지지 덩그런 콘크리트 건물 하나에 나무 침상만 있었다. 그때 배를 어찌나 곪았는지 서울로 오는 비행기 안에서 기내식을 다섯 차례나 받아먹었다."

생전 처음 간 히말라야 원정에서 '대원들이 잘 먹어야 한다'는 기본 원칙을 절절이 체험한 것이다.

이번 원정대는 식량과 장비 등 총 5000kg의 장비를 수송했다. 총 22명의 원정대원을 감안하더라도 상당히 많은 양의 짐이다. 본격적인 등반에 들어가기 전, 이 짐들을 베이스캠프까지 옮기는 것 또한 보통 일이 아니다.

원정대는 카트만두 시내에서 21일까지 머물면서 현지에서 장비를 보충한 다음, 헬리콥터를 통해 장비를 베이스캠프까지 옮길 예정이다. 등반대원들은 22일 루클라 공항(해발 2600m)에 도착한 뒤 1주일 정도 캐러밴을 통해 고소 적응훈련을 하면서, 30일경 5100m 지점인 베이스캠프에 도착할 계획이다.

김영주 humanes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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