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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 단편 릴레이 편지] 김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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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날이 더욱 추워졌습니다. 시골도 이젠 김장을 해야 할 때입니다. 살아가면서 무엇이든지 그 적당한 때를 안다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일입니다. 김장이야기를 하다가 무슨 때 이야기냐구요?

그렇군요. 하지만 김장도 때를 잘 맞춰 해야 예나 이제나 겨우내 김치 하나에 매달리는 서민들은 김치나마 맛있게 먹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꼭 그렇지만도 않네요. 김치 냉장고라는 것이 생겨 때를 잊어버리게 하니까요. 생각해 보니 김치 냉장고 말고도 그 어려운 '때'라는 것을 마음에 두지 않아도 살 수 있게끔 세상은 얼마든지 편하고 윤택한 것들로 가득 찼군요.

갑자기 기분이 좀 이상해집니다. 어쨌거나 날이 이렇게 추워지는 음력 동짓달이 되면 어머닌 텃밭의 배추를 도리고 무를 뽑아서 김장을 하셨지요. 조금 커서는 그 무 구덩이를 파고 무를 묻는 건 내 몫이었지만 그 보다도 더 어렸을 적 배추 뽑는 어머니 옆에 나가 서 있으면 어머닌 배추 뿌리 하나를 깎아서 단가 매운가 먼저 잡숴보고 "추운데 어서 방에 들어가라"시며 손에 쥐여 주셨습니다. 오늘은 그 배추 뿌리가 먹고 싶습니다.

박형진<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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