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있는아침] '내가 달을 비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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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내가 달을 비춘다

낮은 곳에서 높은 곳을 향하여

그도 열심히 달을 비춘다

낮은 곳에서 저 높은 곳을 향하여

생명 가진 것들이

온몸으로 푸르름 다해

이 낮은 땅에서

저 높은 달을 비춘다

안 보이는 지구 밖

세상에 떠다니는

완벽한 죽음의 얼굴을 향하여

온생명 다해 빛을 퍼붓는다

머리를 밤하늘 향해 높이 쳐든 채



내가 거울을 비추어요. 풀잠자리가 연못물을 비추어요. 눈물이 나를 비추어요. 당신이 나를 비추어요. 정육점의 붉은 고깃덩이가 내 심장을 비추어요. 변두리 재개발지구의 개망초꽃이 타워팰리스를 비추어요. 헐벗은 지상의 난쟁이 아버지가 높은 십자가에 걸린 예수님을 비추어요. 생생한 죽음이 딱딱한 삶을 비추듯, 아픈 우리여, 온몸으로 아득바득 달을 비추어요. 살아야 하니까요!

<김선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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