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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터리 「회계처리」/「외부감사제」 개선책 시급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증시개방되면 국제문제로 비화/집단소송제·기업제재 강화필요
기업들이 회계장부를 엉터리로 꾸미고 감사를 맡은 회계법인도 이를 적당히 봐주는 그릇된 행태를 막기위한 방안이 마련되고 있다.
지난달말 부도기업을 포함한 9개 기업의 회계장부 조작 사실을 밝혀냈던 증권감독원이 그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고 있는 것이다.
기업의 엉터리회계처리는 1차적으로 기업가의 양심에 맡길 문제다. 그러나 이같은 행위를 밝혀내야 할 현행 외부감사제도 자체에 구멍이 있다.
기업의 회계처리에 대한 외부감사제도는 80년 국보위때 제정된 「주식회사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에 근거를 두고 있다.
그러나 기업이 감사를 받을 회계법인을 마음대로 선정하는 현행 「자유수임제」 아래서 회계법인들이 감사를 계속 해내기 위해 기업의 비위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하는 폐단이 생겨났다.
회계법인의 부실감사에 대한 제재 또한 약한 편이다.
작년말 결산때 적자를 흑자로 처리했다가 올해 부도를 낸 (주)흥양·기온물산의 지난해 결산을 「적정」하다고 했던 회계법인들이 고작 「경고」를 받았을 뿐이다.
엉터리 회계처리를 한 기업에 대한 제재 역시 미약하다는 지적이다.
수많은 주주들에게 손해를 끼쳤음에도 해당기업에 대해 형사처벌을 가할 수 있는 규정이 없다. 겨우 상법에 이사·감사가 재무제표상의 기재누락이나 부실기재를 한 경우 2백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토록 규정하고 있는 정도다.
세무당국 또한 회계의 중요함보다는 조세수입을 더욱 많이 올리는데 우선하고 있어 기업에서 이익을 뻥튀겨서 계상하거나 허위로 기재하는 행위를 알아내고서도 그냥 넘기는 경우가 더러 있다.
이같은 기업·회계법인의 잘못을 가려내는 임무를 띤 증권감독원 감리국이 1년에 할 수 있는 감리대상은 3백개 기업정도로 전체 외부 감사대상 6천개 기업의 5%밖에 안된다. 사람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많은 기업들은 『설마 그 5%안에 낄까』하면서 당국의 감리를 그다지 의식하지 않는다.
이같은 상황속에서 올들어 부실감사로 손해를 본 일부 소액투자자들이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에 따라 해당회계법인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낼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고작 몇백주를 갖고 있는 소액주주의 경우 소송에 따른 비용과 시간이 많이 걸려 오히려 손해를 볼 수도 있어 쉽사리 나서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부실감사는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다. 내년초부터 주식시장이 개방돼외국인의 직접투자가 이뤄지면 국제문제로까지 비화될 수 있다.
벌써부터 외국의 일부 기관투자가들은 우리나라 기업의 회계처리에 대해 의문을 제기해 오고 있다. 외국의 유수 회계법인들은 한국에 지점을 세우려 하고 있다. 외국 회계법인이 한국에 진출해오면 합작법인부터 야금야금 시장을 잠식할 것이다.
다급해진 증권당국은 여러가지 제도개선방안을 강구중이다.
소액주주들이 피해를 보았을 경우 개개인 모두 소송을 하려면 그 비용과 시간이 많이 걸리므로 그중 한명이 대표로 하게 하는 등의 집단소송제도 도입을 검토중이다. 부실회계처리 기업의 감사,회계담당임원에 대한 제재를 더욱 강화하며 해당기업에 대해서는 기업공개·증자·회사채발행 등에 더욱 많은 제약을 주는 방안도 고려되고 있다. 공인회계사회에 대한 자율적인 감리기구도 만들고,증권감독원의 감리요원을 확충하는 방안도 검토중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현실적으로 여러 어려움이 도사리고 있다. 자칫 제재를 강화했다가는 경제단체로부터 자율화에 역행한다는 비난을 받을 수 있다. 그동안 증권당국은 몇차례 관련법 개정과 제도개선을 꾀했으나 무산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운전자들이 교통규칙을 잘 지키면 많은 교통순경이 필요치 않듯이 기업들이 양심적으로 원칙대로 회계처리를 하면 내고싶지 않은 감시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이다.<양재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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