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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금」 여10억 야3억 필요/총선준비(정치와 돈:74)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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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비공식 외부협찬금 받고 땅등 팔아 비축/주간연재
11월을 넘기면서 예산처리와 주요법안 심사가 마무리되면 13대 국회는 사실상 파장되고 국회의원들은 이제 본격적인 선거채비로 부산을 떨게 된다.
이와 함께 벌써부터 수월찮게 들어가는 선거자금 마련에도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요즘은 현대그룹 정주영 명예회장의 납세거부사태로 정계­재계간 긴장이 조성돼 기업쪽에 손을 벌리기가 힘든데다 최근 노태우 대통령이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기업에 정치자금을 의존하지 말 것』을 엄명한 바 있어 이래저래 속앓이가 심하다.
이같은 고민은 아무래도 기업수혜가 상대적으로 많은 여당의원들이 더하다. 한 민자당 중진의원은 『당장 「돈줄」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고 있지만 기업하는 사람들이 「도대체 어려운 시기에 정치권이 해준게 뭐 있느냐」는 식의 면박을 많이 한다』고 푸념한다.
대부분 의원들은 14대총선에 들어갈 비축 선수금으로 여당 10억원,야당 3억원 정도로 평균 어림하고 있다.
단순한 계산법에 따르면 여당의 경우 한 지역당 동책이상 당직자 2천명을 기본가동조직으로 삼아야 하는데 선거기간중 최소한 세차례에 걸쳐 1회당 1인 10만원씩은 최소비용으로 제공해야 한다. 조직가동 기본비용만 5억원이 나가는 것이다.
경남 지역에서 지난번 출전했던 한 지망생은 3억원을 들고 내려갔더니 수삼일만에 쓴곳 없이 사라지더라며 이번에도 최소 5억원은 확보하지 않고는 선거에 들어갈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물론 선거기간 전체에 드는 총경비와는 또 다르다.
선거비용 마련방법은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대략 ▲자기소유 부동산·기업자금으로부터 염출하거나 ▲공식적인 중앙당 지원·후원회의 지원을 받거나 ▲비공식적인 외부협찬금에 의존하는 세가지 갈래가 있다.
현재 의원들은 국회와 지역구활동과는 별도로 친지·동창·지역유지·업계인사 등과 틈틈이 만나 선거자금 지원을 요청하거나 본격 운동에 들어가면 구체적으로 얼마를 도와달라는 약속을 받아내는 일에 여념이 없다.
수산업계를 다루는 위원회에 소속돼 있는 재선의 A의원은 최근 정부제출자료를 검토하던중 관련업계 한 협회의 지출내용 보고에서 문제점을 발견했다고 한다.
그는 이 문제점을 발견한 덕분에 협회로부터 몇천만원의 「협조」를 얻었다고 한다.
3선 중진인 B의원은 평소 자신을 도와주던 중소기업 대표가 자금난을 호소하며 모금융회사로부터 3억원을 대출받을 수 있도록 요청했다.
B의원은 마침 그 금융회사의 이사장등 경영진과 안면이 있는 터여서 전화를 걸어 이를 가능하도록 주선해 주었다.
그가 중소기업 대표로부터 「알선료」를 받았는지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대개의 경우 모르는 사이일지라도 대출 커미션은 3%선이라는게 중론이다.
그러나 이같은 특정 사안을 둘러싼 주고받기식 자금모금보다 대부분의 경우는 미래에 대한 투자,혹은 만약의 사태에 대비한 보험료성격으로 「돈줄」들이 알아서 선거자금을 제공한다고 봐야 한다.
수도권지역 민자당의 한 원외위원장은 『3선급이상,특히 중요당직을 맡고 있는 중진의원들은 특별히 모금작업에 나서지 않더라도 지역구와 굵직한 업자들이 선거비용을 걱정해주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귀띔하고 13대당시 선거운동과정에서 1억5천만원이 저절로 모이더라는 자신의 경험도 털어놓았다.
돈을 자진해서 제공하는 업자들은 주로 지역내 호텔·건설업 등 사정기관에 약한 사업을 운영하는 쪽이 많다고 한다.
민자당의 경우 20명에 이르는 지구당 부위원장을 비롯한 당직자들이 지원하는 액수도 상당하다.
상위 당직자의 상당수는 지역내 돈많은 유지들로 채워지는데 이들은 직접 자신의 돈이나 할당구역을 맡아 모금한 돈으로 위원장을 보좌(?)한다.
민자당 한 초선의원은 이같은 외부협찬금으로만 약 7억원을 모을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당3역쯤 되면 선거후에 오히려 선거자금이 남을 정도가 되며 야심있는 중진들은 몇몇 의원에게 자금을 보태줌으로써 소계보를 만들어 나가기도 한다.
그래도 떳떳하고 공개적인 방법은 후원회 모금방식이다.
현행 정치자금법은 1백명 이하의 후원회로부터 평년 1억원,선거해 2억원까지의 자금지원을 받을 수 있게 돼있다.
여당의원들은 거의 후원회를 운영하고 있지만 회원에 대한 정치적 탄압가능성을 이유로 후원회 구성을 그동안 미뤄왔던 야당의원들도 선거철이 다가오자 공식적인 후원회 발족을 서두르고 있다.
그러나 회원들의 목돈마련 능력이 아무래도 여당보다는 크게 떨어져 다수 소액주의로 나가는게 보통.
야당에서도 의원이 아닌 선량후보들은 있던 집까지 팔아 자금을 마련하는 사람이 비일비재하다.
서울지역에 조직책 신청을 낸 민주당의 원외인사는 어렵사리 마련한 30평짜리 아파트를 팔아 최근 17평짜리 독채 전세로 이사갔다.
공천을 받고 선거전에 들어가면 중앙당지원(최소 5천만원)과 동창등으로부터의 1억원 정도 모금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지만 당장 사전 기본활동비로 현금 3천만원쯤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들에겐 선거자금이 곧 정계진출의 장벽이 되기도 한다. 돈안쓰는 선거는 그래서 새 정치지망생에겐 더 절실하다.<전영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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