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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년 무사고 택시운전/80세 기사 “느긋한 핸들”/서울 김광명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9면

◎그만두면 병날것 같은 노익장/“백번 양보”가 안전운행의 비결/“승객 하자는대로 하면 마찰없어/통일길 달려 고향 함흥 가봤으면”
80세의 할아버지가 택시 핸들을 잡고 거리를 달린다.
국내 최고령 모범운전기사 김광명씨(80·서울 신당동 347의 452).
김씨는 아침 7시30분이면 어김없이 집을 나서 서울3하1428 스텔라개인택시를 몰고 밤 10시30분까지 서울 곳곳을 누비고 다닌다.
『앞으로 5∼6년은 더 할 수 있어요. 일을 그만두면 오히려 병이 날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일하는게 즐겁고 건강에도 도움이 돼 핸들을 놓지 않고 있다는 김씨는 또 『수입이 생겨 마누라나 자식들에게 손을 안벌려 마음도 편하다』고 했다.
1911년생인 김씨가 운전을 배운 것은 고향 함흥에서 중학을 나와 도청에 사무직으로 근무하던 1937년.
그는 일본인 운전사의 조수가 되어 운전면허를 딴뒤 도청 내무국장 승용차를 몰았다. 당시 차종은 미제 뷰익.
해방직후 공산치하에서는 한때 도인민위원회 운전사로 일하기도 했으나 곧 그만 두었고 6·25전쟁이 터져 국군이 함흥까지 진격해왔을때 국군수송대 군속으로 자원,소속부대가 흥남에서 묵호로 후퇴하면서 김씨도 군수물자를 실은 트럭을 몰고 함께 남하했다.
김씨의 핸들인생은 전쟁중에도 계속된 셈이다.
그는 70년대말 사업하느라 잠시 「직업으로서의 운전」을 그만둔 적이 있으나 그외에는 외도한 적이 없어 경력이 50년이 넘는 것은 물론 그동안 단 한번의 사고도 없었다.
50년 무사고 비결을 그는 『느긋한 마음으로 백번이라도 양보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김씨는 개인택시 면허연령제한이 없어지면서 지난해 8월 개인택시면허를 받았다.
개인택시를 받기전 교통안전진흥공단이 실시하는 적성검사에서도 김씨는 응급처치판단·속도추정·중복작업 반응·시력검사 등을 모두 통과,젊은이 못지 않은 건강을 지니고 있다.
『욕심없이 주어진 여건에 만족하면서 살면 누구나 건강해진다』는 김씨는 『마음이 편치 않으면 몸도 「고장」이 나는 법』이라며 자신의 건강비결이 「무욕」에 있다고 소개했다.
김씨는 『매일 정확한 시간에 식사하고 힘들면 점심식사 후에 30분정도 쉰다』고 할뿐 건강을 위해 특별히 신경쓰는 것은 없다고 했다.
김씨의 부인 송순녀씨(64)는 『3형제가 모두 80세가 넘도록 건강하게 생존해 계시다』며 술·담배를 안하고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것이 장수의 비결인 것 같다고 거들었다.
슬하에 2남2녀를 둔 김씨 부부는 서울 구로공단에서 기계부픔 공장을 하는 큰아들 내외와 함께 살고 있다.
이틀 택시를 몰고 하루 쉬는 날 오후면 국민학교 3학년 손녀와 집근처 장충공원에 산책가는게 김씨의 큰 즐거움.
김씨는 쉬는 날이면 또 어김없이 서울 을지로6가 로터리에서 모범운전자 교통봉사근무를 한다.
모범운전자 중부지회 부회장 이재한씨(55)는 『근무를 빼드리려고 해도 빠지시는 일이 없어 젊은이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고 자랑했다.
김씨는 지난 4월23일 「고령에도 불구하고 승객서비스 향상과 운수사업발전에 이바지 했다」는 공로로 전국 개인택시연합회장 표창을 받기도 했다.
『승객들 하자는대로 하면 승객과 아무 마찰이 없다』는 김씨는 차를 몰고 북한에 남기고 온 부모님 묘소를 찾아 절을 올리는게 남은 소원이라고 했다.<이영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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