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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나 드림'은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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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선양(瀋陽)행 고속도로를 타고 교외로 나가다 보면 제5순환도로 부근에 야트막한 콘크리트 건물들이 눈에 들어온다. 더우거좡(豆各莊) 구류소다. 불법 체류 외국인들이 머무르는 베이징시 공안국 산하의 임시 수용시설이다.

중국 공안은 비자 기간을 넘겨 체류해온 외국인들의 신병이 확보되는 대로 이곳으로 이송해 최장 30일간 보호하며 조사한다. 불법 체류 사유와 그동안 다른 불법 행위를 저지른 건 없는지 공안요원들이 샅샅이 캐묻는다. 주중 한국대사관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해부터 이곳엔 한국인이 자주 들어오고 있다. '차이나 드림'을 품고 중국에서 큰 돈을 벌기 위해 입국했으나 사업에 실패하는 바람에 귀국조차 포기하고 노숙자 신세로 전락해 전전하다 이곳으로 끌려온 사람들이다. 연령대는 40~50대가 주류고, 대부분 남성이라고 한다.
<본지 3월 13일자 12면>

이들 중에는 이미 심각한 가정불화를 겪었거나 스스로 가족과 연락을 끊은 이도 많다고 한다. 지난해 말에는 한국과 연락도 닿지 않고 무일푼인 노숙자를 중국 공안이 벌금을 면제해 주고 항공료까지 부담해 한국으로 보내준 '미담'도 있었다. 사업에 실패해 중국인이 낸 세금으로 초라하게 귀국한 것이다.

베이징의 한국 총영사관은 중국 공안으로부터 한국인이 수용된 사실을 통보받을 때마다 백방으로 국내 가족을 수소문해 최대한 빨리 귀국토록 주선해 주고 있다. 줄을 잇는 탈북자 문제에 이어 한국인 노숙자 보호 및 처리 업무가 추가된 것이다. 대사관이 확인한 '한국인 노숙자'가 50명을 넘었다는 소식은 중국에서 돈 벌기가 결코 녹록지 않다는 점을 말해준다.

중국이 변하고 있다. 외국인 투자라면 무조건 환영하던 모습이 아니다. 기술 수준이 낮거나 오염을 유발하는 기업들은 사양하고 있다. 그저 저임금만 보고 중국으로 몰려가던 시대는 지났다. '한국에서 실패했더라도 중국에 가면 뭔가 돌파구가 생기겠지'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그런 중국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사업에 실패해 노숙자로 전락한 이들이 그런 메시지를 분명하게 보내고 있다.

장세정 베이징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