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뜬소문에 겨우살이 막막…”(촛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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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헛소문을 근거없이 퍼뜨린 장기철 회장은 즉각 물러나라­.』
21일 오후 서울 남영동 한국지체장애자협회 사무실. 목발을 짚거나 가족들의 부축을 받은 장애인 1백여명이 이틀째 점거농성을 벌이고 있었다.
길거리나 시장 등지에서 행상등으로 생계를 이어온 이들은 이 협회 장회장이 9월 중순쯤 난데없이 『구걸·행상 장애인의 배후에 폭력조직이 있는 것을 확인했다』며 경찰에 일제수사를 요청함에 따라 그동안 사회적 냉대와 함께 겨울을 앞두고 생계가 막막해졌다고 주장했다.
『그이후 아이들조차 창피하다고 학교에 나가길 꺼려 얼마나 마음아팠는지 몰라요. 심지어는 수입이 줄자 아내가 어려워진 생활을 견디다 못해 집을 뛰쳐나간 사람도 생겨났어요.』
『지나가는 사람들마다 던지는 의혹의 눈초리는 그런대로 견딜 수 있었지만 마치 중죄인이나 된 것처럼 한밤중에도 수사관들이 집에 들이닥쳐 경찰서로 끌고 갈때는 처참한 기분마저 들었어요.』
금은방주인 김수철씨(42)는 자신의 봉고차로 집근처에 사는 장애자 6명의 출·퇴근을 도와주다 조직폭력배로 몰려 봉변을 당했다고 했다.
대책마련을 위해 영세장애인들이 모여 만든 모임의 총무를 맡고 있는 김영석씨(24)는 『동냥은 못줄망정 쪽박은 깨지 말아야 할 것 아니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이에 대해 장회장은 『모든게 오해에서 비롯됐다』고 말하다가 뜬소문을 확인했다는 근거가 무엇이냐는 질문에는 말꼬리를 흐렸다.
그러나 장애자들은 장회장이 최근 「앵벌이」들을 자신의 협회에서 맡아 관리해주는 대신 신문가판대의 운영권을 맡게 해달라고 서울지하철공사에 보낸 공문을 들어보이며 분을 삭이지 못하고 있었다.
일부 장애자관계자의 공명심,또 소문이 퍼지게 된 사회전반의 불안심리,변죽만 울리는 장애자복지대책들….
어느 이유든 이들의 분노를 잠재울 수 없을 것이라는 마음에 이들에게 올 겨울은 무척 추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홍병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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