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합」 여론에 금융당국 “곤혹”/금리자유화 시행 첫날 표정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이자부담 늘어났다” 기업들 불만/8개 단자사도 당분간 공동보조
금리자유화 1단계 조치가 드디어 21일부터 시작됐다. 이미 오래전부터 예고됐던 일이라 큰 동요는 없었으나 금융계와 업계는 88년말의 「자유화실패」를 기억하는듯 모두들 조심스런 표정들이었다.
○…이날 각은행 직원들은 평소보다 일찍 출근해 조정된 금리변동표를 일제히 내붙였다. 지점장등 간부들은 『앞으로 은행간 경쟁은 훨씬 치열해질 수 밖에 없으며 이제 앉아서 장사하던 때는 지난 것 같다』며 긴장된 모습들.
특히 수신경쟁이 가열될 것으로 보는 은행관계자들은 3년이상 장기수신금리가 이번에 1%포인트 정도 상향조정된 점을 다소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으나 실세금리와의 격차는 여전히 커 예금유치효과는 미미할 것으로 전망.
○…은행측이 이번 금리현실화 조치에 따른 기업들의 실질부담증가를 과소평가하고 있는 반면 기업들의 걱정은 크다.
럭키금성상사의 자금담당실무자는 『차등금리 기준에 담보력이 10∼20% 반영됨에 따라 담보보다는 신용대출이 많았던 대기업들은 불리해졌다』고 지적했으며,삼성물산측은 『꺾기예금보다는 외환수수료로 금리차를 보전해줬던 종합상사들은 명목금리 인상만큼 고스란히 이자부담이 늘어나게 됐다』고 말했다.
한편 은행에 대한 수지기여도가 금리책정에 정식 반영됨에 따라 같은 회사라도 거래 은행별로 당좌대출 금리가 달라지는 현상이 빚어지게 됐는데 삼성물산측은 주거래은행으로부터는 우대금리(연12%)를 적용받겠지만 다른 은행으로부터는 12.5∼14%의 금리를 적용받을 것으로 내다봤다.
○…예상했던대로 시은·지방은행 할것 없이 당좌대출 금리가 연12∼15%로 똑같아지자 재계에서는 『이것은 금리자유화를 빙자한 금리인상에 불과한 것』이라며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출.
여기다 일부에서 결국 「담합」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일자 은행측과 금융당국은 적잖이 곤혹스런 표정들.
그러나 간사은행인 상업은행의 이현기 행장은 『초기단계에서 과도한 금리인상은 곤란하다는 언질을 당국으로부터 받았지만 금리결정 과정에 담합은 전혀 없었다』고 강조.
○…시중은행들은 이번에 조정된 금리체계를 일단 3개월정도 운용해 보고 그동안 금리변동 요인이 생길 경우 그때가서 재조정할 방침인데 은행간 금리차등화 전략은 쉽게 기대하기 힘들다는게 금융계의 중론.
서울신탁은행의 한 임원은 『간사은행등이 금리를 조정하면 다른 은행들이 뒤따라 갈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단자·보험 등 제2금융권은 21일 당초 책정했던 금리보다 낮은 수준에서 금리를 결정해 그동안 재무부의 보이지 않는 「조정」과 「지도」의 강도를 반영.
서울소재 8개 단자회사들은 이날 거액기업어음(CP)의 매출금리는 16.4%,할인금리는 16.9%선에서 운용키로 공동보조를 취했고,보험회사들도 상업어음할인율을 당초 생각해온 18∼19%선에서 17%로 후퇴시키는 한편 연체금리도 은행권과 같이 21∼22% 수준에서 적용키로 했다.
이에 대해 제2금융권 관계자는 『재무부측이 여러 경로를 통해 표면금리가 지나치게 오르는 것을 우려한다는 뜻을 전해왔다』며 『당분간 연리 17%가 제2금융권 금리의 마지노선이 될 것 같다』고 전망.<심상복·이철호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