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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소련파 처형되거나 강제노동/“생사라도 알아야”애타는 재소유족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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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반당분자”로 재판도 없이 숙청/함북농장간뒤 “감감”/박창옥 부수상/“시골서 돌맞아 피살”/박의완 부수상/가족 검거후 무소식/김철우 군사위원/“직장 옮기던 중 처형”/김칠성 해군소장
45년이후 북한에 파견되어 김일성 정권에 참여했던 소련국적 또는 소련거주 한인들 가운데 북한정권내의 권력투쟁 과정에서 「소련파」로 몰려 숙청된후 실종,지금까지 생사여부가 확인되지 않고 있는 인사가 모두 45명인 것으로 밝혀져 또한번 충격을 주고 있다.
재소한인들의 단체인 고려인협회(회장 박미하일)산하 「조선에서 활동한 고려인 유가족 후원회」는 지난 8월 해방초기부터 북한정권에 참여했다가 숙청된후 행방불명된 인사들의 정확한 숫자 등을 파악,유엔인권위원회 등에 이들의 생사여부와 숙청배경 등을 조사해 달라는 청원서를 제출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고려인유가족후원회는 정상진 회장을 비롯,강상호 부회장(83·전북한내무성 부상·소련레닌그라드시거주),유성철 부회장(73·전북한인민군작전국장·소우즈베크공화국수도 타슈켄트시 거주),장학봉 사무국장(73·전북한정치군관학교장·타슈켄트시거주)등 4명으로 조사반을 구성 ▲북한정권에 참여했다가 「반동·종파분자」 등으로 몰려 망명·탈출·자진귀환등 형식으로 소련으로 되돌아가 생존해 있는 인사들과 ▲숙청유가족 등을 대상으로 2개월동안 실태를 조사,실종된 당정고위인사는 지금까지 막연히 알려진 것보다 배이상 많은 45명으로 밝혀냈다.
특히 실종인사들은 억지 사상검토 등을 거쳐 현직에서 쫓겨나거나 하위직으로 강등된후 ▲적법한 재판절차 없이 비밀리에 처형됐거나 ▲강제수용소에 수감중 수용자들끼리 타살 형식으로 죽였거나 ▲산간오지·탄광·협동농장 등으로 보내진후 무소식 또는 ▲체포된후 행방불명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을 뿐 지금까지 정확한 생사여부를 알 수 없는 상태다.
또 현재 소련에 살고 있거나 사망한 유가족들은 ▲실종인사들이 가족을 그대로 둔채 혼자 입북한 경우 또는 ▲평양에 함께 간후 남편이 숙청뒤 행방불명되자 소련으로 되돌아온 케이스 ▲가족과 함께 입북했다가 자녀를 소련에 유학 보낸 후 부부가 행방불명된 경우 등으로 대부분 남편 또는 부모없이 30여년동안 어렵게 살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북한의 내각부수상등 당정고위직을 지냈던 「소련파」의 거두 박창옥은 56년 1월 노동당 상무위원회에서 문화예술 분야에서 반동적 부르좌 사상과의 투쟁강화를 소홀히 했다는 이유로 숙청,부인과 함께 함북산골의 농장지배인으로 쫓겨간후 지금까지 생사여부를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박창옥 부부는 그러나 자녀 2명을 소련에 두고 평양에 들어가 이들 남매는 현재 모스크바에서 살고 있다.
역시 내각부수상 등을 지냈던 박의완은 57년 모스크바 출장때 소련주재 북한대사 이상조씨(80·소련민스크시거주)를 만나 개인숭배를 배격하는 내용의 편지를 받아 노동당에 전달한 혐의로 58년 전원회의에서 출당,검거되어 농촌으로 끌려간후 돌에 맞아 타살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을 뿐 정확한 생사여부가 확인되지 않고 있다.
박의완은 부인과 아들을 소련에 두고 입북,부인은 남편의 소식을 기다리다 병사했고 현재 아들(46)이 알마아타시에서 딸(20·의과대학3년재학중)과 함께 어렵게 살고 있다.
자강도인민위원장이었던 박창식은 56년 9월 반당종파분자로 몰려 숙청된후 부인과 함께 행방불명,자녀 3명이 부모의 생사를 모른채 소련에서 외롭게 살고 있다.
특히 실종인사들중 당·정·학계·문화계등 고위인사들에 대한 숙청은 형식적이지만 중앙당의 전원회의·상임위원회·정치위원회 등의 결정을 거쳤으나 인민군 고위간부들에 대한 숙청은 형식적인 절차도 없이 ▲직제를 축소한후 직위를 부여하지 않고 있다가 체포하거나 ▲프라우다신문을 보거나 이른바 종파분자들과 함께 식사를 한 사실 등에 대한 자술서를 쓰게 한후 검거 ▲1계급씩 승진시킨뒤 일정한 보직을 주지 않고 있다가 비밀리에 검거해 처형하거나 탄광·협동농장등으로 보내는등 수법을 써온 것으로 드러났다.
군단군사위원(소장)을 지냈던 김철우는 58년 반당종파분자로 몰려 철직된후 부인등 전가족과 함께 군당국에 의해 검거돼 행방불명된 것으로 알려졌다.
해군참모장(소장)이었던 김칠성은 한국전쟁당시 해군사령관 이영호(중장)가 해군병원에서 위급환자용 몰핀주사를 빼돌려 맞고 있다고 상부에 보고,당시 민족보위상 김광협(이영호와 동서간)이 육군대학으로 보내 그곳으로 가던중 체포돼 처형당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그의 부인은 현재 타슈켄트시에 살고 있다.
포병 소장 정학준은 중장으로 승진됐으나 보직없이 1개월여동안 지내다 지방여행중 체포돼 행방불명 상태이고 통신소장 이종인도 전선사령부에서 간부국으로 전보돼 가던중 체포돼 지금까지 생사여부를 모르고 있다.
이밖에 인민군 후방사령부 대좌 전일과 후방국장 김혜경 부부는 평양에서 함께 검거돼 산간오지로 끌려간뒤 지금까지 소식이 없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모스크바=김국후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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