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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은 나의 세 번째 다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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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장애인 비보이 주니어 보실라가 10일 서울 역도경기장에서 열린 ‘비보이 유닛 월드 챔피언십’ 심사에 앞서 무대에 올라 관객들에게 기술을 선보이고 있다. [사진=김상선 기자]

10일 오후 서울 올림픽공원 역도경기장에서 열린 '비보이 유닛 월드 챔피언십'. 8개국에서 선발된 대표급 비보이들이 각축을 벌이기 직전, 대회장 무대에 웬 절름발이 흑인이 올라섰다. 엉거주춤한 자세, 어딘가 불편한 듯한 모습…. 순간 객석엔 "정상인들도 하기 힘든 브레이크 댄스를 그가 과연 할 수 있을까"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그러나 함께 무대에 오른 시각 장애인 전제덕씨의 서정적인 하모니카 연주에 맞춰 그는 폭발적인 에너지를 뿜어냈다. 절룩거리는 다리는 엇박자의 독특한 스텝으로 바뀌었고, 프리즈.헤드 스핀.윈드밀 등 고난도 비보이 동작을 가뿐히 해치웠다. 팔은 마치 '제3의 다리'인 양 자유자재로 물구나무를 서며 마치 서커스의 한 장면을 보여주는 듯 했다.

이 '절름발이 비보이'는 프랑스에서 활동 중인 주니어 보실라(Junior Bosila.26)다. 지난해 '비보이 유닛'에 출전했던 그는 올해는 심사위원 겸 축하 공연을 위해 한국을 찾았다. 이날 가장 많은 박수 갈채를 받은 주인공은 3위에 오른 한국 출전팀 '리버스크루'도, 우승을 한 미국팀 '마인드 180'도 아닌 그였다.

보실라는 아프리카 콩고에서 태어났다. 태어난 이듬해 발생한 내전을 피해 가족은 프랑스 북부 생 말로로 이민 갔다. 이민 직후 멀쩡하던 그의 오른쪽 다리는 조금씩 마비 증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소아마비였다. 가난하고 어려웠던 터라 그는 별다른 치료도 받지 못한 채, 숙명처럼 장애를 안고 살아왔다.

절룩거렸지만 그는 음악을 좋아했다. 동네 꼬마들 앞에서 엉거주춤 춤추는 것을 자랑하곤 했다. 그가 본격적으로 비보이에 입문한 것은 16세때. "다리보다 상체를 많이 쓰는 것을 보고 나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그러나 프로페셔널 비보이 세계에서의 시선은 차가웠다. 대회 출전 자체가 어려웠던 것은 물론, 설사 대회에 나가도 예선에서 떨어지곤 했다. 고난도 동작을 보이기에 앞서 기본적인 스텝을 제대로 밟지 못하는 것이 이유였다. "좌절하지 않았어요. 누구한테 이기려고 비보이를 한 게 아니라 내가 하고 싶어서 시작한 것이니깐요."

대신 그에겐 다른 비보이들이 가지지 못한 장점이 많았다. 우선 다리를 못 쓰는 대신 발달한 팔과 어깨 근육은 멈춤 동작 등을 하기에 최적의 신체 조건이었다.

뛰어난 음악성 역시 그만의 독특한 리듬감으로 변모했다. "무엇보다 쉽게 포기하지 않는 전투력이 나의 현재를 만들었다"고 그는 말한다.

그는 현재 명실공히 세계 최고 수준의 비보이다. 지난해 '비보이 유닛'에서 프랑스팀이 우승할 수 있었던 것도 그의 활약이 결정적이었다. 비보이 유닛을 주최하고 있는 G-Corp 박세준 대표는 "주니어 보실라가 출전하느냐에 따라 대회 수준이 좌우될 정도다. 팀 배틀에서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데에 그만한 카리스마를 가진 비보이는 없다"고 단언했다.

보실라는 "신은 공평하다. 하나를 안 주었으면 다른 하나를 반드시 준다. 장애가 없었으면 현재의 내가 있었을 리 없다. 장애는 신이 내게 준 가장 큰 선물"이라고 말했다.

최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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