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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 사령관 '한국군 복무 단축 우려' 왜 나왔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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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버웰 벨 주한미군사령관의 '한국군 병사들의 병역기간 단축과 병력 규모 감축'에 대한 발언은 국방부 발표와 배치된다. 벨 사령관은 7일 미 의회 청문회에서 "한국군이 추진 중인 군 복무기간 단축은 병력 충원 문제가 발생하고 군대의 내실을 해치거나 작은 군대를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주한미군사령관이 미 의회에 출석해 한국군의 국방개혁 내용을 언급하며 우려를 표시하기는 처음이다.

하지만 국방부는 지난달 6일 복무기간 단축과 병력 규모 감축을 발표할 때 "병사들의 복무기간 단축 등 병역제도를 개선하면 정예강군을 육성하고 전투력을 강화할 수 있다"고 밝혔었다. 벨 사령관과 국방부가 전혀 다른 해석과 전망을 내놓은 것이다. 국방부는 2014년 7월까지 병사들의 의무복무 기간을 6개월 단축하고, 병력은 2015년까지 13만 명가량 줄이기로 했다.

◆성급한 병역 단축 경계=벨 사령관이 동맹국의 국방정책을 문제 삼은 것은 성급한 병역기간 단축과 병력 규모 감축이 '안보 불안'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분석된다. 북한의 핵과 군사적인 위협이 해소되지 않은 상태에서 한국군 병력부터 줄이는 것은 한반도 방위에 취약점으로 작용할 소지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한반도 방위를 맡고 있는 벨 사령관으로선 최악의 상황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는 게 군사 전문가들의 평가다. 특히 노무현 정부의 병력규모 감축 등에 정치적 고려가 깔린 게 아니냐는 부시 행정부 일각의 우려도 반영한 언급이란 해석도 나온다.

김인종(육사 24기.예비역 대장) 전 2군사령관은 "병력 감축은 첨단 무기를 위주로 하는 질적 구조를 먼저 갖춘 뒤 이뤄져야 한다"며 "질적 개선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병력 감축과 복무기간 단축은 심각한 전투력 약화를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전시작전통제권 전환=한국군의 병력 감축은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전환에도 장애가 될 수 있다. 병력이 크게 감축하는 시기는 전작권이 한미연합사령관에서 한국군 합참의장으로 전환되는 2012년 바로 다음해다. 전작권이 전환되면 한반도에서 지상작전은 한국군이 책임지고 해.공군 작전은 미국이 주도한다.

그러나 질적 개선이 안 된 한국 육군 병력은 40만 명 남짓하지만 북한 지상군의 병력은 100만 명이 넘는다. 따라서 한국군의 병력 감축계획은 미국의 전작권 전환 구상에 차질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군이 동원 병력까지 370만 명에서 200만 명 수준으로 줄이는 것은 더 위험할 수 있다고 벨 사령관이 판단한 것으로 분석된다.

국방부 강용희 홍보관리관 직무대리는 "한국의 병역제도 개선이 확고한 대북 억제력을 고려한 가운데 신중하게 추진됐으면 한다는 동맹군 사령관으로서의 원칙적인 바람을 언급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젊은 층 반미감정 우려=벨 사령관은 "한국의 젊은 층은 북한의 전통적인 위협을 다양하게 인식하고 있고 한국전쟁에서 미국이 희생했던 기억을 잊어가고 있다"며 "보다 대등하고 수평적인 동맹 관계를 추구하면서 오랫동안 지속해온 한.미 동맹의 중요성에 의문을 표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벨 사령관이 '반미감정'이란 단어를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젊은 세대들의 새로운 한.미 관계 정립 요구가 자칫 반미감정으로 표출될 수도 있다는 경계심을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김민석 군사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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