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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뭘하십니까|공군대서 북한군 사정세 강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6면

83년 귀순, 인민군복을 벗어던지고 대한민국 공군복으로 갈아입은지 올해로 9년째.
이웅평중령(37)은 요즘 서울대방동 공군대학에서 북한담당 군사정세 교관으로 활약하고 있다.
연일 계속되는 강의와 세미나준비로 여념이 없는 이중령을 지난달 29일 오후 대방동 공군회관에서 만났다. 이곳은 그가 7년전 11월2일 부인 박선영씨(28)와 백년가약을 맺었던 곳이다.
바뀌지 않은 것이라고는 훤칠한 외모와 특유의 평안도사투리뿐이라는 이중령은 어느 곳에서 만나든 편안한 대화를 나눌수 있는 그런 상대였다.
『몇년전 이사한 방배동 40평짜리 아파트에서 아들(5)·딸(6) 남매를 두고 있습니다. 네 식구가 살기에는 넓은 편이지요. 아침 8시까지의 출근때는 쏘나타승용차를 자가운전합니다.』
귀순하던 바로 그해 소령이 됐고 이듬해 11월 공군사관학교 역사학 교수인 박예재씨의 딸 선영양과 1년여 연애끝에 결혼식을 올린 그는 86년부터 3년간 중앙대에서 정치외교학을 공부하기도 했다.
최근 소련등 동구권의 체제붕괴와 남북교류관계를 묻자 그는 남북통일에 앞서 최우선으로 선행돼야 할것은 바로 전면적인 경제교류라고 강조했다.
『남북간 개개인의 인간생활은 큰 차이가 없습니다.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면 바로 경제구조지요. 통일을 위해 가장 먼저 전제돼야 할것은 바로 시장경제를 실시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정착되고 나면 이데올로기·체제라는 것들이 얼마나 허구적인 것이었는지 금방 밝혀지게 될겁니다.』
사회주의체제가 안고있는 모순에 대한 그의 지적은 신랄했다.
『사회주의체체는 이미 정답이 정해져 있는 사회입니다. 개개인의 창의성이나 다양성은 곧체제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되지요. 북한에서는 장교들이 토론회때 실례를 들때도 심지어 중앙당에서 정해져 내려온 실례만 사용해야지 제각기 다른 실례를 말했다간 큰일납니다.』
남북한의 군경력을 합하면 올해로 21년째라는 이중령은 전투기 조종사 출신답게 남북간 전력 비교도 빼놓지 않는다.
『우리 공군은 지휘·통신·통제·정보등 이른바 C3I체계가 잘돼 있습니다. 조종사 개개인의 전투준비태세나 장비·조직면에서 북한과는 비교가 안됩니다. 실례로 북한에서는 조종사 경력 10년째가 돼도 야간요격 능력이 없습니다.
또 북한의 경우 조종사들의 연간비행훈련시간이 40시간에 불과한데 비해 여기서는 연간 1백80∼2백시간 비행훈련을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다 북한조종사들 가운데는 병원에서 「건달치는 놈들」(꾀병을 앓는 사람들) 이 많습니다.』 귀순할 당시만 해도 진급은 고사하고 목숨만 살려준다면 개나 키워 보신탕집을 차려 먹고살 계획까지 했었다는 이중령은 『북한에서 가장 인기있는 식품인 단고기(보신탕)의 껍질은 외화벌이를 위해 반드시 당에 반납해야 한다』고 외화수입에 허덕이는 북한실정을 설명했다.
그가 진단한 우리 사회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개인이나 집단이 자신의 편의·이익만을 도모키 위해 갖은 수단·방법을 동원하고 있다는 점.
사회 구성원들 각자가 저마다 자기 희생은 거부한채 욕구만 증대시켜 나가는 경향을 설명하면서 그는 어느새 「집단 이기주의」니, 「지역감정」이니 하는 한국사회 특유의 사회학적 개념들을 거침없이 구사했다.
『그런 이기주의적 사회구조 속에서도 군대사회만은 아직 오염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사리를 뒤로 미루고 공익을 앞세우는 자세는 군인들 가운데 가장 잘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일반사회도 이런 점들은 본받아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결혼 초기만 해도 내 한목숨 기꺼이 조국의 통일 제단에 바치겠노라며 밤잠을 못이룰 때가 많았다는 그는 『사람이 한평생 살아가는데 무슨 거창한 사명이나 주의보다 자식들 잘 기르며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는게 가강 값진 삶이라는 사실을 이제서야 터득하게 됐다』며 한차례 웃었다.
2년전부터 자신을 공군대학교관으로 발탁해 준 점, 그리고 자신의 경력을 그대로 다인정, 공사23기생들과 똑같은 대우를 해주고 있는 점들에 대해 그이상 고마울 수가 없다는 이중령의 수입은 봉급·각종 수당을 합쳐 월평균 1백50만원.
그는 고물가난 속에 사는 삶의 지혜로 동료들끼리 점심을 먹으러 갈 때도 항상 생활수준이 제일 낮은 사람을 기준으로 메뉴를 정한다고 말했다.
이중령의 일과는 보통 오후5시에 끝나지만 곧바로 귀가하는 경우는 드물다. 동료 교관들은 물론 각계 인사들을 만나 세상사는 얘기를 주고받는 것만큼 자신을 빨리 적응시켜 나가는데 유익한 것은 없기 때문이다.
번번이 밤늦은 귀가에도 불구하고 『다른 것은 몰라도 여자가 남자들 하는 일에 바가지 긁는 것만큼은 절대 허용하지 않는다』는 가부장적 집안관리가 아직까지는 주효하다며 파안대소한다.
이중령은 그러나 일요일만은 반드시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을 원칙으로 지키고있다.
귀순이후 줄곧 이중령의 모든 생활을 가까이서 지켜본 홍종도공군정훈감(대령)은 『우리사회에 적응키 위한 이중령의 노력은 놀라울 정도』라며 『이중령에게서 가장 본받아야할 점은 남이 무슨 얘기를 해도 변명하려 들지 않고 실천으로 보여주는 자세』라고 했다.
홍대령의 거듭 칭찬에 『이거 영 불편하구만요』라며 쑥스러워하는 이중령은 자유세계에 적응해 오는 동안 자신의 진실을 이해하지 못하고 마치 동물원의 원숭이 보듯 대할 때가 가강 괴로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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