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고리·목걸이 빼고 … 골프가방 닫고 … '강남 아줌마' 축구에 빠졌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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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눈이 내리는 가운데 아셈 축구단 선수들이 김성균 코치(오른쪽에서 셋째)의 지휘 아래 중동고 운동장에서 러닝을 하고 있다. [사진=김상선 기자]

"골프도 재미있지만 전신운동을 하기에는 축구가 최고지요."

여성 생활축구의 바람이 서울의 '문화 1번지'인 강남구에도 상륙했다. '강남 아줌마'들이 축구단을 만들었다. 서울의 25개 구 중에서 여섯 번째 여성 축구단이다.

매서운 꽃샘추위가 몰아닥친 5일 오후 일원동 중동고 운동장에 20명의 '아줌마 축구선수'가 모였다. 대부분 40대 중반인 이들은 축구선수는커녕 축구공을 한 번도 차 본 적이 없는 완전 초보다. 30대가 가장 어리고, 64세 할머니(?)가 최연장자였다. 대부분 보기 플레이(90타) 정도의 아마추어 골퍼들이지만 '강남구 여성 축구단'을 만든다는 소식에 너도 나도 지원했다.

강남구 로고가 새겨진 빨간색 유니폼과 축구화를 받은 이들은 운동회에 나온 아이들처럼 좋아했다. 영하 3도의 강추위와 때마침 몰아친 눈보라 속에서 훈련이 시작됐다. 중동고에는 최근 강남구가 7억원을 들여 만든 인조 잔디가 깔려 있다.

코치를 맡은 김성균(38.신답초 감독)씨가 주의사항을 전했다. "귀고리나 목걸이 같은 귀금속은 빼 주시고, 정강이 보호대는 반드시 착용하세요. 무리한 동작을 하면 다칠 수도 있으니 조심하시고요. 참, 화장은 해도 됩니다."

아닌게 아니라 대부분 훈련하러 온 선수 치고는 좀 진하다 싶은 화장을 했다.

가벼운 스트레칭과 러닝, 인사이드 드리블과 패스 연습으로 훈련은 1시간 동안 진행됐다. 이들은 어설픈 동작이지만 진지하게 훈련에 임했다. 한 번이라도 공을 더 차보고 싶어 공 쟁탈전을 벌이기도 했다.

총무인 정지순씨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재미있다"며 활짝 웃었다. 이진규씨는 "축구를 하니까 땀도 흠뻑 흘리고, 팀 플레이도 배울 수 있어 매력적"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매주 세 차례 모여 훈련하기로 했다. 22일 중동고에서 창단식을 겸한 첫 '공식 경기'를 한다. 상대는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는 '슛돌이 축구단'이다. 30~40대 아줌마와 5~8세 어린이의 축구 경기 결과가 무척 궁금하다.

팀 이름은 '아셈(ASEM) 축구단'이다. 2000년 삼성동에서 열렸던 '아시아.유럽 정상회의(ASEM)'의 평화와 우애 정신을 담았다. 창단 작업을 한 강남구청 문화체육과 박희수 팀장은 "'이웃 송파구에는 여성 전용 축구장도 있어서 주부 축구팀이 전국대회를 휩쓴다는데 우리 구는 언제 팀을 만드느냐'는 전화를 많이 받았다"고 말했다. 올해 초 구청 소식지에 모집 공고를 냈더니 1주일도 안 돼 신청자가 정원(25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일간지 체육기자 출신인 이향렬 단장은 "2002월드컵 이후 여성 축구팬이 크게 늘었지만 이들이 직접 축구를 할 '마당'이 없었다. 아셈 축구단이 건강하고 아름다운 여성 축구의 새 모델을 만들어 보일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회원들은 형편이 어려운 학생 선수들과 일대일로 자매결연해 '어머니 사랑'도 베풀기로 했다.

글=정영재 기자<jerry@joongang.co.kr>
사진=김상선 기자 <ss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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