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대 국책은행 구조개편 제대로 되면 내년 정부 보유 지분 쏟아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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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마련 중인 국책은행 구조 개편 방안의 윤곽이 드러나고 있다.

우선 산업.중소기업.수출입은행 등 3대 국책은행이 맡고 있는 정책금융 기능은 살리겠다는 게 정부 입장이다. 산업은행이 신용카드 위기 때 LG카드를 인수한 것처럼 시장 안전판으로서 역할은 여전히 필요하다는 것이다. 민간이 나서기에 무리한 남북 경협이나 해외 투자.자원개발 사업도 수출입은행이나 산은이 맡을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그렇다고 국책은행을 그대로 안고 갈 수도 없다. 아직도 정책금융의 역할이 필요한지가 의문이고 민간 금융회사에 비해 생산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받고 있다. 최근에는 고임금에 과도한 복지 혜택을 누려 '신이 내린 직장'이란 비난이 거세다. 정책금융 기능은 살리되 민간과 경쟁하는 부문은 따로 떼어 궁극적으로 민영화하는 방안은 이런 사정을 감안한 고육책으로 풀이된다.

◆산업은행 분리=산업은행은 민간 영역을 끊임없이 침범해 마찰을 빚어왔다. 회사채 인수 시장에선 산은의 시장점유율이 20%가 넘는다. 막강한 자금력 덕에 사모투자펀드(PEF)나 벤처투자에서도 '공룡'으로 통한다. 자회사로 대우증권까지 거느리고 있다. 지난해 감사원이 대우증권을 빨리 팔라고 압박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참여정부가 추진해온 자본시장통합법도 변수가 됐다. 법안이 국회 통과를 목전에 두고 있지만 아직 증권업계는 눈치만 볼 뿐이다. "국내에도 미국 골드먼삭스 같은 투자은행이 나올 것"이라며 이 법안을 밀어붙인 재경부로선 몸이 달 수밖에 없다. 산은 IB부문과 대우증권을 합쳐 새로운 금융투자회사를 만든다는 구상이 나온 배경이다.

자본시장통합법의 모델을 직접 만들어 보겠다는 것이다. 또 대우증권만 따로 파는 것보다 산은 IB부문과 합쳐 금융투자회사로 만들면 매각가치가 높아진다.

그러나 풀어야 할 숙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산은 분할에 대해 노조와 내부 조직의 반발은 불 보듯 뻔하다. 그렇다고 IB부문을 분할하는 시늉만 내고 민영화 시기를 얼버무리기도 힘들다. 대우증권을 팔지 않으려는 '꼼수'라는 비난을 비켜가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올해 국책은행 구조 개편의 밑그림을 그리되 본격적인 수술은 차기 정권으로 넘어가지 않겠느냐는 관측도 나온다.

◆우리지주.기업은행 민영화는=기업은행 민영화에는 큰 이견이 없다. 중소기업 지원은 정책자금만 취급하는 산은으로 이관한다는 복안이다. 정부 관계자는 "이미 기업은행의 정책금융 기능이 많이 줄어 산은에 넘길 업무도 그렇게 많지 않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1차로 기업은행의 정부소유 지분(65.8%) 절반 정도를 올해 안에 매각하기로 방향을 잡고 있다.

여기에다 예금보험공사가 보유한 우리금융지주 지분 78%도 시장에 나온다. 금융지주회사법은 예보의 우리지주 지분 28%를 27일까지 팔고 나머지는 전략적 투자자에게 매각하되 시한을 1년 연장할 수 있도록 못 박아 놓았다. 본격적인 우리금융 매각이 내년으로 넘어가면 국민은행이 인수하려다 불발된 외환은행과 기업은행까지 한꺼번에 시장에 매물로 나올 수 있다. 은행 판도에 지각 변동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국책은행 구조를 개편한 뒤 궁극적으로 신용보증기금.기술신용보증기금까지 포괄해 하나의 지주회사로 묶겠다는 정부의 구상은 장기과제가 될 전망이다. 현 정부 임기 안에 3대 국책은행의 구조개편을 마무리하기에도 벅차기 때문이다.

정경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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