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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인은 왜 정부를 신뢰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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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평소 한국에 관심이 많은 그가 엊그제 저녁을 사겠다고 했다. 저녁을 하면서 그와 나눈 대화 몇 토막.

"무슨 좋은 일 있나요. 저녁을 다 사고…."

"(웃으며) 제가 사긴요. 홍콩 정부가 사는 거지요."

"저번에 발표한 세금 환급 얘기인가요."

홍콩 정부는 지난 1일 지난해 재정흑자의 36%인 200억 홍콩달러(약 2조4000억원)를 시민들에게 환급해 주기로 발표했었다.

"예. 참 맘에 들어요. 보너스도 주고. 참 한국도 경기가 좋으면 세금을 돌려주나요."

"기억이 없는데요…."

지난해 그가 낸 소득세는 모두 3만8900홍콩달러(약 466만8000원). 그러나 올 소득세는 3만3700홍콩달러. 지난해보다 5200홍콩달러가 준다.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해는 연말정산에서 예상보다 10%나 많은 1만5000홍콩달러를 환급받았다. 지난해 달성한 6.8% 성장이 모두 시민들 덕이라며 세금공제 범위와 액수를 크게 늘렸기 때문이다.

내친김에 이달 25일 있을 홍콩행정장관 선거에 대해 물었다. 누구를 지지하느냐 물었더니 도널드 창(曾蔭權) 현 장관이든 이에 맞서는 공민당의 알렝 렁(梁家傑) 후보든 상관없다고 했다. 누가 되든 현재 세계경쟁력 1~2위를 다투는 홍콩 정부의 효율성과 능력, 그리고 청렴성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게 그의 지론이다.

계속된 대화 몇 마디.

"정부를 신뢰하나요."

"예. 국민을 편하게 해주니까요."

"어떻게 편하게 해주는데요."

"외국기업들을 유치해 경제가 잘 돌아가게 하고, 시민들은 정부를 믿고 각자 위치에서 법과 질서를 지키고."

"경제 말고도 시민들에게 배려한 게 있나요."

"일상생활에서 많아요."

그가 말한 홍콩 정부의 시민을 위한 배려 몇 가지.

출근길 지하철에 사람이 많다 싶으면 억지로 밀고 들어갈 필요가 없다. 1분 뒤 정확히 도착하는 후속 열차를 타면 된다. 지하철 개찰구도 개찰구를 빠져나간 뒤 동선에 따라 정확히 배치해놨다. 단 몇 걸음이라도 시민들이 수고를 덜 수 있다. 응급환자는 정부 병원으로 가면 뇌수술을 해도 300홍콩달러(약 3만6000원) 범위에서 해결된다. 위급한 생명을 살리는 일은 돈으로 계산할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해서다. 영어.한국어 등 6개 외국어를 배우면 수업료의 80%를 정부가 내준다. 시민들의 경쟁력이 곧 홍콩의 경쟁력이란 생각에서다.

대신 규정을 지키지 않으면 철저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 규정을 지키는 시민들을 위한 정부의 배려다.

인터넷 요금을 제때 내지 않으면 곧바로 연결이 끊어진다. 요금을 내도 재연결 비용 100홍콩달러(약 1만2000원)를 내야 한다. 신용카드 요금을 제때 결제하지 않으면 기한 다음날 결제해도 200홍콩달러의 벌금이 부과된다. 정부는 기본적으로 기업에 대한 세무조사를 하지 않고 회계사가 제출한 보고서를 근거로 세금을 부과한다. 그러나 장부를 속인 사실이 한번 드러나면 홍콩에서 비즈니스할 생각은 말아야 한다. 음주운전 측정도 없다. 그러나 사고로 음주사실이 확인되면 구속은 물론, 사고에 따른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다.

핼런 교수는 이 모든 것이 시민들을 편하게 해준다고 했다. 저녁을 마치고 돌아와 인터넷에서 한국 뉴스를 보니 올해 한국 봉급쟁이는 지난해보다 18만원 정도 세금을 더 내야 한다는 기사가 떠 있었다.

최형규 홍콩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