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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년간 일기 거른 적 없어요"|거제도 농부 원용균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6면

『3개월동안 일기를 쓰는 사람은 무언가를 시작하는 사람이고, 3년동안 일기를 쓴 사람은 무언가를 이루고 있는 사람이며, 30년동안 일기를 써온 사람은 무언가를 이룬 사람이다』라는 말이 있다.
경남 거제군 동부면 산양리에서 3천평의 논농사를 짓고 사는 원용균씨(65)는 지난 46년부터 지금까지 하루도 거르지 않고 일기·금전출납부를 써왔다는 점에서 무언가를 이룬 사람이다.
원씨가 46년간 써온 일기는 공책으로 2백30여권에 달하며 커다란 나무 궤짝 2개에 소중히 보관돼 있다.
45년 12월부터 고향인 동부면의 서기로 일을 시작한 그는 20세가 되던 해인 46년 11월1일 첫 일기를 썼다.
일제 때 쓰던 마분지로 된 서류철의 겉장을 뒤집어 「일기대장」이라고 표지를 적은 그의 첫날 일기는 먹을 갈아 쓴 붓글씨로 사무시작, 가내사고무, 기타사고무 라고 간단하게 적혀있을 뿐이지만 첫 일기라는 점에서 감회가 깊다고 한다.
파지를 재생해 만든 갈색 갱지에 자신이 철필로 등사해 칸을 질러 그날의 날짜·날씨 등을 적는 난을 구분해 놓은 것 일기장은 아궁이의 연기에서 배어든 그을음이 옆면을 거무스름하게 물들이고 있는 고색창연한 모습이다.
한번 써보자는 생각이 문득 들었을 뿐 처음 일기를 시작하게 된 별다른 계기는 없다고 그는 말하지만 기록·정리를 근본업무로 했던 한 성실한 면서기가 자신의 근무자세를 집안에서도 적용시킨 예로 보인다.
그 뒤 1년을 쓰고 나니 그동안 쓴 것이 아까워 계속하지 않을 수 없었고 다음해, 그 다음해에도 이런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지금에 와서는 일기를 쓰지 않으면 밥을 굶는 것보다 더 허전해 반드시 그 날 일을 기록하고 보는 습관으로 굳어진지 오래다.
철저하게 자신이 보고 들은 것에 대해서만 쓰지 항간의 소문 같은, 근거가 확실하지 않은 내용은 전혀 기록하지 않는 그의 일기작성 원칙은 주관적 감상을 전혀 배제한 무미건조한 관찰기록과 같은 일기를 낳았다.
예컨대 지난 20일의 일기는 대학노트 크기의 일기장에 깨알같은 글씨로 한 페이지 가깝게 적혀있지만 그 내용은 몇 시에 교회에 가서 어느 목사의 설교를 듣고 돌아오는 길에 누구네 밭에 누구네 콤바인이 와서 벼베기 하고 있는 것을 보았고 언제 소를 먹였고 하는 기록들뿐이다.
하지만 그의 일기는 바로 그 특성으로 인해 그 지역의 역사기록과 같은 구실을 하고 있다.
언제 개똥이네 할머니가 돌아가셨는가, 부산으로 간 수철이가 언제 결혼했는지는 그의 장례식 참석 날짜, 그 집에 축의금을 낸 날짜를 일기에서 찾아보면 쉽게 확인된다.
매매관계로 분쟁이 생기면 당시에 그가 입회한 기록을 일기장에서 확인해 보면 재판의 판결문과 같은 효력을 갖는 것으로 산양마을 사람들은 여기고 있다.
양력·음력 두 가지의 날짜를 한꺼번에 기록해 놓는 것도 그의 습관이다. 자신의 생일을 음력으로 밖에 몰라 답답해하던 어느 교사는 원씨의 일기를 보고 양력 생일을 확인하기도 했다.
맑음, 흐림, 비, 눈 등으로 날씨를 기록하는 그의 일기는 기상자료 구실도 하고 있다.
이웃 동부국민학교 동영분교에서는 재작년 운동회 날짜를 정하면서 그의 자문을 구했다.
10월20일쯤 운동회를 해야겠는데 그 날의 날씨가 좋을 것인지 알 수가 없었던 김용길 교사(45)가 그에게 지난 10년간 그 날짜의 날씨를 확인해달라고 부탁했던 것.
원씨는 일기를 뒤져 그 날짜에 비가 온 것은 지난 10년간 한차례밖에 없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확인했고 이에 따라 운동회 날짜도 확정됐다. .
정작 운동회가 열린 날은 흐리기는 했으나 비가 오지는 않았다는 게 그의 일기 기록이다.
그가 일기를 하루도 쉬지 않고 써올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워낙 성실했던 데다 생활이 평탄했던 덕분이기도 하다.
공무원인 그는 6·25전쟁때도 계속 면서기로 근무했고 자신이나 가족이 아파서 병원에 가야했던 일은 한번도 없었다.
면서기로 시작한 그는 그곳에서만 30년을 근속, 75년엔 면장을 지낸 뒤 그 해 퇴직했다.
그 뒤 민주공화당 동부면 관리장·한국반공연맹 동부면 지도위원장·동부면 정화추진위원회 부위원장 등을 지냈고 지금은 동부면 투표관리위원회 위원장이다.
슬하의 5남1녀가 모두 결혼해 분가한 그는 경남도지사의 장한 어버이상·거제군수의 모범 알뜰가정 표창장을 받은 점에서 나타나듯 자식교육에서도 성공한 사례로 꼽힌다.
맏아들(44)은 부산에서 목사를 하고 있고, 둘째(41)는 한전본사 컴퓨터 담당 과장, 셋째(38)는 쌍용자동차 과장, 넷째(32)는 서울시경 경사, 고려대를 졸업한 막내아들(29)은 럭키개발 신입사원으로 모두 훌륭하게 성장했다.
고명딸(35)도 가정주부로 평범하지만 행복한 생활을 꾸려나가고 있다.
7대째 내려오는 여섯칸 한옥에서 부인 신순주씨(64)와 단둘이 살며 경운기 한대로 논3천평·밭 4백평을 갈며 별다른 욕심 없이 살고있는 원씨지만 비료값도 안 나오는 농사는 정말 문제라고 지적한다.
밭농사는 부식이고 논농사가수임원인데 3천평에서 나오는 쌀이 34가마로 올 수매가가 가마당 11만원이라면 3백74만원이 1년 열두 달 농사지은 대가다. 하지만 비료대·농약값·인건비를 빼면 언제나 적자일수밖에 없다는 것.
농협에 영농자금 빚이 2백만원 있는데 농사를 계속 지으려면 올해도 빚을 늘릴 수밖에 없는 형편이란다.
공사장 막노동 일당이 하루3만원이니 농사를 지어 빚만 걸머지려 하는 사람은 바보밖에 더 있겠느냐는 게 자조섞인 한탄이다.
일손이 아무리 부족해도 사람을 데려다 쓸 수 없어 무슨 일이든지 환갑이 넘은 내외가 해낼 수밖에 없다.
그는 논을 놀리느니 남에게 거저 농사를 지으라 해도 경운기가 들어갈 수 있는 좋은 논이 아니면 고개를 흔드는 것이 현실이라며 폐농해버려 묵히고 있는 논이 이 동네에도 여러 곳 된다고 했다.

<조현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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