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로는 "고민 중" 발로는 대권 행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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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이 5일 경북 포항산업과학연구원에서 창립 20주년 기념 특강을 했다. 정 전 총장이 강의 시작 전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 [뉴시스]

정치인의 마음을 알려면 '입'이 아닌 '발'을 봐야 한다는 말이 있다. 말이 아닌 행동에서 속마음이 읽힌다는 얘기다.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이 그런 경우다. 대선 출마 여부를 묻는 질문에 그는 몇 개월째 "고민 중"이란 취지로 답해 왔다. 5일 포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런 '입'과 달리 '발'은 분주하다. 그는 최근 고향(충남 공주)인 충청도를 빈번하게 찾고 있다. 소방관들 행사에도 참석했다. 그래서 "대선 주자 행보"(열린우리당 고위관계자)란 얘기가 정치권에서 나온다.

◆"재.보선 출마는 안 한다"=그는 이날 포항산업과학연구원의 20주년 기념 특강차 포항공대를 찾았다. 교수.학생들과 악수하고 시설을 둘러보느라 분주한 그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는 "사람의 행로를 바꾸는 결정을 쉽게 할 수 있겠느냐"며 확답을 피했다.

-4.25 재.보선 출마설 또는 역할론이 나온다.

"여러 번 말했지만 출마 안 한다. 정치하기로 결정하지 않았는데 무슨 역할을 하란 거냐. 오늘 아침에도 대선 행보란 기사가 났던데 난 '대선'이란 말을 한마디도 한 적 없다."

-대권 '잠룡(潛龍)'에서 '비룡(飛龍)'이 됐다는 말도 있다.

"잠룡이든 비룡이든 '용'이란 말을 붙이지 말라. 아무것도 결정된 게 없다. 일생을 사회 덕을 보면서 살았다. 이젠 보답하려는 생각이다."

-봉사의 대상에 국민도 포함되나.

"군수든 면장이든… 적용되는 말 아닌가."

-범여권에서 대선 주자로 추대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확인해 봤더니 (그런 계획이) 없다고 들었다. 나에게 직접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없다. 범여권이 뭔지도 모르겠다."

◆"박태준 리더십은 성장과 통합"=특강에서 그는 경제와 교육 얘기를 많이 했다. 교육과 관련해선 "(서울대 총장 시절 도입한) 지역 균형 선발을 넘어 계층 균형 선발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거나 "방향은 잘 모르겠으나 대학 입시와 관련한 현재의 3불 정책(본고사.기여입학.고교등급제)은 재검토돼야 한다"고 했다. 또 "기업이 원하는 건 차선이라도 일관된 정책인데 매일 정부가 무슨 말을 할까(몰라) 자신이 없어서 투자가 안 이뤄지는 면이 있다"고 정부의 경제정책을 비판했다.

경제학자인 케인스를 언급하기도 했다. "케인스는 경제학 등을 잘하고 문화활동도 했지만 케임브리지대의 재산 관리를 해서 킹스칼리지의 재산을 5~6배 늘린 사람이다. 그런 게 리더의 몫"이라고 했다. 경제학자인 정 전 총장은 대표적 케인스 학파로 꼽힌다.

그는 포스코 설립자인 박태준 명예회장에 대해 "박태준 리더십은 성장과 통합과 미래의 리더십"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그러면서 "내가 (포항의) 영일 정(鄭)가"라며 포항과의 인연을 강조하기도 했다.

◆"대선 출마하시라"=그의 근래 행선지는 충청에 집중되고 있다. 공주대.국립 대전현충원 등을 잇따라 찾았고 4, 5월엔 각각 충남대.한밭대에서 특강을 한다. 정치권에선 특히 4일 국립 대전현충원에서 열린 순직 소방관 추모제에 참석한 걸 눈여겨보고 있다. 열린우리당 이상민 의원이 초대한 자리라고 한다.

이 의원은 "충청 민심이 성숙되면 앞으로 정 전 총장을 찾아뵙고 대선 출마를 강력히 요청할 생각"이라고 말한다. 정 전 총장은 이날 행사 관계자 100여 명과 함께 설렁탕을 먹는 자리에서 한 참석자로부터 "대선에 출마하시라"는 권유를 받았다고 한다.

고정애 기자, 포항=정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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