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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만 외국기업들 '13억 시장의 결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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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한국에서는 유명 가방 브랜드인 '가파치'는 1990년대 중반, 중국 백화점에 진출했다. 한국 디자인의 제품을 중국에서 생산해 중국에 팔 계획이었다. 그러나 진출 2~3년 만에 백화점 매장에서 철수했다. "전 세계 유명 가방 브랜드가 다 들어와 있어 지명도에서 밀리고, 가격은 중국 토종 업체들에 밀렸다"(김영덕 기호피혁 중국 지사장)는 것이다.

13억 인구에다 최근 5년간 소비 시장이 연평균 11.5%나 커지고 있는 중국. 소비시장으로서의 중국에 대한 매력은 더 이상 설명할 필요가 없을 정도다. 지난해 말 무역협회가 중국에 진출한 기업 177개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78.8%가 중국사업을 확대하거나 현재의 규모를 유지하겠다고 응답한 것도 바로 거대한 시장 규모와 무한한 잠재력 때문이다. 지난해 말까지 중국에 설립된 외국인 기업 수만 59만6098개다. 이들이 투자한 금액은 모두 6854억 달러에 이른다.

이렇다 보니 중국에선 업종과 국적을 불문하고 '영역 넓히기' 전쟁이 벌어진다. 상하이 세기공원에는 까르푸 매장이 있다. 상하이 이마트 정민호 대표는 "그곳은 이마트가 들어가려고 건물주와 거의 계약 성사 단계까지 갔다가 까르푸에 빼앗겼다"고 했다. 거대 자본을 가진 다국적 기업들은 각종 소비재 부문을 전방위로 사들이고, 이에 맞서 토종기업들도 맞불을 놓는다. 중국에 점포가 없던 미국 유통업체 홈디포도 최근 중국 건자재 할인점인 자쥐(家居)를 인수하며 중국 시장에 발을 붙였다. 암웨이.에이본 등 미국계 직접 판매업체들도 영업에 나섰다. 외자.토종기업 간의 한판 대결도 벌어지고 있다. 가전 유통업체의 경우 미국계 베스트바이가 로컬 체인점인 우싱(五星)을 인수하자, 중국 선두업체인 궈메이(國美)는 융러(永樂)를 인수하며 덩치를 키우고 있다.

성공한 토종기업에 대한 다국적 기업 인수합병(M&A) 입질도 많다. 네슬레는 중국의 국물내기 조미료로 쓰이는 닭고기맛 가루 시장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던 토종기업 타이타이러(太太樂)를, 미국계 다국적 기업인 크노르는 점유율 2위인 하오지(豪吉)를 인수하면서 중국 전통 조미료 시장을 다국적 기업이 점령했다.

토종업체의 약진도 만만찮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다국적 기업들의 경쟁 무대였던 고부가가치 상품 시장에도 토종기업들이 포진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말 중국품질만리행촉진회는 중국 토종 휴대전화 단말기 업체인 '보다오(波導)'를 '가장 신뢰할 수 있는 휴대전화 브랜드 품질 대상' 업체로 선정했다. 99년 설립된 업체가 불과 7년 만에 고가 휴대전화기까지 출시하며 쟁쟁한 다국적 기업과 휴대전화 단말기 시장에서 어깨를 겨루고 있는 것이다. 보다오는 2003년 노키아 등 세계 굴지의 기업을 제치고 내수 판매 1위를 차지했다. 세계 1, 2위 브랜드인 노키아와 모토로라가 보다오의 석권에 맞서 2004년부터 저가 휴대전화 시장에 뛰어들었을 정도다. 자본으로 무장한 다국적 업체와 시장을 잘 아는 토종업체들 사이에 낀 '샌드위치' 신세인 한국 업체는 뛰어난 기술력과 정보력으로 시장을 개척해야 할 처지다. 최근 CJ중국법인은 다국적 기업이 자리 잡은 닭고기 가루 시장에 뛰어들고 대대적으로 광고 캠페인을 시작했다. 이 회사 박근태 사장은 "중국 시장에서 점유율 5%만 차지해도 엄청난 규모이기 때문에 앞으로 5년 이상 투자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KOTRA 베이징무역관 이종일 관장은 "농업현대화, 금융.증권 등 서비스산업, 환경산업 등 개방 폭이 늘어날 분야를 잘 파악해 한국 기업들도 경쟁 대열에 함께 서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특별취재팀:중앙일보=양선희.권혁주 기자(경제부문)
한국무역협회=송창의 중국팀장, 이승신 무역연구소 수석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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