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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Bs] 계란으로 바위 깬 그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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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2면

경기도 이천 하이닉스반도체 본사 안에 있는 하이닉스 전시관에서 지난달 27일 젊은 사원들이 반도체를 만드는데 필요한 웨이퍼(원판)와 최종 제품인 모듈을 들고 포즈를 취했다. 왼쪽부터 이준헌(ETCH제조기술4팀)이율하(IT기획팀)·이차경(고객기술지원팀)·박준덕(플래시 마케팅)·조상진(MASK 개발팀 연구원).

반도체 D램 분야 세계 2위, 낸드 플래시 분야 세계 3위. 해외에서 더 인정받는 메모리 반도체 전문 기업 하이닉스 반도체의 지난해 세계 시장 점유율이다. 지난해에는 매출 7조7000억원, 순이익 2조600억원으로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2003년 3분기 이후 14분기 연속 흑자를 이어가고 있는 중이다.

국내 시가총액 10위권 안에 들 뿐만 아니라 단일 기업이면서 굴지의 그룹사를 제치고 삼성전자.포스코와 함께 '2조원 클럽'에 들어가 있는 알짜배기 기업이다. 전체 생산량의 98%를 수출하고 있으며 애플.휴렛팩커드 등 세계 유수의 IT.전자.반도체 기업들이 주 고객이다. 세계적 히트 상품인 애플의 아이팟(iPod)에 하이닉스의 플래시 메모리가 들어간다.

반도체는 한국이 세계에서 1위를 하고 있는 몇 안 되는 산업 중 하나이다. 이런 반도체 산업을 이끌고 있는 양대 산맥 중 하나가 하이닉스 반도체다. 하이닉스 반도체의 뿌리는 현대전자다. 1999년 현대전자가 LG반도체를 흡수 합병해 세계 최대 D램 생산 기업으로 출발했다.

하이닉스반도체가 지난해 말 개발한 세계 최고속(200㎒)·최소형(512Mb) 모바일 D램. 휴대전화에 탑재되며 100원짜리 동전의 8분의 1 크기다.

◆부활 신화=하이닉스 반도체는 암흑기를 이겨내고 화려하게 컴백한 신화를 가지고 있다. LG반도체와 합병 후 12조원대의 천문학적 부채를 떠안고 침몰 직전까지 갔던 이 회사는 2001년 해외 매각 위기를 넘어 채권 금융기관 공동 관리를 받는 워크아웃 기업이 되기도 했다. 독자 생존을 위해 메모리 반도체 부문을 제외한 모든 사업 분야를 매각하고, 남은 직원들은 임금 동결과 무급 휴직을 하며 회사 살리기에 나섰다.

반도체 생산 라인 한 개를 만드는 데 4조~5조원이 들어갈 정도로 반도체 사업은 천문학적인 투자를 필요로 한다. 투자 여력이 없는 상황에서 임직원들은 "옛 장비를 개조해 새로운 공정에 사용해 보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반도체 역사상 누구도 시도하지 않은 도전이었다. 애널리스트들은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고 했다. 그러나 직원들은 사무실에서 먹고 자며 연구에 몰입한 끝에 옛 장비를 업그레이드해 생산성을 확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다.

워크아웃 2년 만에 흑자로 돌아섰으며, 3년9개월 만인 2005년 7월 워크아웃을 졸업했다. 하이닉스의 위기가 일시적인 재무상의 위기일 뿐 기술 경쟁력에서 뒤처지는 것은 아니라는 회사 측의 주장이 확인된 것이다. 반도체 역사상 전무후무한 일을 이뤄내 세계를 놀라게 했던 이 같은 기술 노하우는 하이닉스의 자산이 되었다.

◆패기 있는 '대가족'=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든 경험을 나눈 직원들은 자신감이 생겼다. 모바일&플래시 사업본부 박준덕씨는 "죽을 뻔하다 살아난 기업이기 때문에 '하면 된다' '안 되는 게 어디 있느냐'와 같은 패기와 불굴의 의지를 곳곳에서 느낄 수 있다"고 분위기를 설명했다.

워크아웃 당시 매일 팀별 생산량을 체크해 성과가 우수한 팀을 선정해 포상했다. 좋은 성적을 낸 팀의 노하우는 모든 팀이 공유할 수 있도록 교육했다. 이 같은 전통이 남아 지금도 매달 우수팀과 직원을 선발해 포상하고 다른 직원들이 벤치마킹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경쟁 속에서도 서로 챙겨주는 가족적인 분위기가 있다고 직원들은 입을 모은다. 조상진 연구원은 "어른은 있되 마냥 엄하기만 한 것은 아닌 대가족 분위기"라며 "선배들은 치밀함 속에서도 인간미를 보여준다"고 말했다. 지난해 입사한 고객기술지원팀 이차경씨는 "입사 직후 전주에서 있었던 대학 졸업식에 파트장과 팀원들이 꽃다발을 들고 찾아와 학교 친구들이 부러워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입사 1년차 때 부서를 대표해 해외 출장을 갔을 정도로 개개인에게 일을 믿고 맡겨 책임감을 갖고 빨리 배울 수 있다"고 덧붙였다. 2주간의 신입사원 합숙 교육에 들어가면 반도체에 관한 기초 교육을 비롯한 프레젠테이션 요령, 비즈니스 매너 등을 배운다. 지역 봉사 활동과 무박 40㎞ 행군을 하며 동료애를 익힌다. 멘토링 프로그램을 통해 신입사원이 업무 능력을 높이고 조직 문화에 쉽게 적응하도록 배려했다. 글로벌 MBA와 어학 연수 프로그램 등 해외 교육 기회도 있으며 국내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하는 것도 지원해 준다.

이천과 청주 사업장에는 기숙사.체육시설.문화센터 등이 있어 무료로 또는 싸게 이용할 수 있다. 회사 내에 상주하는 의료진에 무료 진료를 받을 수 있으며 외부 병.의원의 의료비도 연간 300만원까지 지원해 준다. 인사팀 이영호 부장은 "대졸 신입 사원의 이직률이 사무직의 경우 3.5%, 연구 개발직은 0.1%로 업계에서 매우 낮은 편"이라고 말했다.

박현영 기자

하이닉스 반도체는

■연혁

-1983년 2월 현대전자로 출발

-1999년 10월 LG반도체 흡수 합병

-2001년 3월 하이닉스 반도체로 변경

■2006년 실적

-매출액:7조6930억원

-영업이익:2조570억원

-당기순이익:2조550억원

■세계 시장 점유율

-D램: 세계 2위(16.6%)

-낸드 플래시: 세계 3위(18.5%)

-메모리 반도체 분야: 2위(11.5%)

-반도체 분야 종합 순위: 8위(2.8%)

■직원 수: 1만 9000명(해외법인 포함)

■사업장: 경기도 이천 본사, 충북 청주 공장, 서울 대치동 서울사무소, 미국.중국.일본.독일 등에 생산.판매법인 18개

자료: 하이닉스 반도체, iSuppli

Q & A

Q:올해 채용 계획은 어떻게 되나요.

A:대규모 공채는 하반기에 실시한다. 9월 채용 공고를 낸 뒤 서류전형과 면접을 거쳐 11월 최종 합격자를 발표한다. 상반기에는 소규모 대졸 신입사원 채용과 여름방학을 겨냥한 인턴을 뽑는다. 실습을 마친 인턴은 해당 부서에서 승인하면 입사 자격이 주어진다. 지난해 대졸 신입사원 채용 규모는 상반기 120~150명, 하반기 600~650명 등 모두 800여 명이었으며 올해도 비슷한 수준이 될 것이다. 재학 중 학비를 보조받고 졸업 뒤 입사를 약속하는 '하이닉스 장학생'도 한 해에 100여 명 입사한다.

Q:전형 과정은.

A:1차 서류전형을 통과하면 2차로 하이닉스가 자체 개발한 인성.적성 검사인 'HYNAT'를 치르게 된다. 이후 기술역량면접과 인성면접, 신체검사 등 5단계의 전형을 거치게 된다.

Q:연봉은 얼마나 되나요.

A:지난해 대졸 초임 연봉은 3100만원이었다. 지난해에는 이와 함께 기준급의 650%에 해당하는 인센티브를 줬다. 따라서 대졸 사원의 경우 4000만원이 넘는 연봉을 받은 셈이다.

Q:어디에서 근무하게 되나요.

A:처음 입사하면 경기도 이천 본사와 청주 사업장, 서울 사무소 세 곳 중 한 곳에 배치된다. 이후 해외 법인에서 근무할 수 있다.

Q:해외 근무 기회는 많은가요.

A:미국 오리건주 유진시와 중국 장쑤(江蘇)성 우시(無錫)시에 생산법인이 있다. 미국.중국.일본.독일 등에 판매법인이 있고, 최근 러시아와 인도에 사무소를 개설하는 등 18개 해외 사무소를 운영하고 있어 해외에서 근무할 기회는 많다. 특히 지난해 문을 연 중국 공장은 아직 초기 단계이기 때문에 직원들이 수시로 단기 파견되고 있다. 중국어에 능통한 입사 지원자에게는 가산점을 준다.

신입사원

지난해 12월 하이닉스 반도체에 입사한 신입사원 이준헌(25.사진)씨는 대학으로 찾아온 캠퍼스 리쿠르팅 행사를 통해 하이닉스에 관심을 갖게 됐다. 이 회사에 다니는 대학 동문 선배들이 찾아와 회사를 소개하는 자리였는데, 이때 도전적인 회사라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임금이나 복지 수준은 대기업급이면서도 벤처기업의 역동성이 느껴졌다. 또 '아직은 1등이 아니다'라는 점도 도전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한 차례의 위기를 극복한 회사인 만큼 끈기 있고 돌파력 있는 인재를 원할 것이라고 판단하고 면접에 들어갔다. 초등학교 때부터 부모님의 채소 장사를 돕고 있고, 군 제대 후 복학하기 전까지 공사 현장에서 시멘트를 날랐던 경험, 여행 경비를 모으기 위해 새벽에 신문을 배달한 일, 대학 3학년 때 한 달 동안 라오스.캄보디아.태국을 육로로 여행한 경험담을 씩씩하게 털어놓았다. 면접관들이 그의 '생존 능력'을 높이 평가했다는 이야기를 나중에 들었다.

고려대에서 신소재공학을 전공한 그는 반도체 재료와 공정.전자 재료 등의 수업을 통해 반도체 관련 공부를 했다. 토익점수는 700대로 그리 높은 편은 아니지만, 학과 내 '매스포럼'이라는 영어 프레젠테이션 소모임에서 활동하며 영어 발표력을 키웠다.

입사 뒤 반도체 에치(ETCH) 제조기술 4팀에 배치받은 이씨는 이천 공장의 반도체 라인에서 현장 적응 훈련을 받고 있다. 회사에서 지정해 준 멘토(후견인) 선배와 3개월의 교육 목표를 설정한 뒤 매일 과제를 해결하며 일을 배우고 있다. 선배들에게 물어보거나 각종 자료를 찾아 이를 바탕으로 문제 해결 방안을 도출한 뒤 멘토와 토론을 통해 결론을 내리고 자기 지식으로 만드는 과정이다.

이씨는 "회사의 규모와 능력에 비해 지원자들로부터 저평가 받고 있는 것 같아 아쉽다"며 "20년쯤 뒤에는 세계 1위인 하이닉스 반도체의 사장이 되는 것이 꿈"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박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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