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김진송 '나무로 깎은 책벌레 이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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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미술 평론가이자 근현대 문화연구자인 김진송(44)씨는 또한 지난 5년동안 ‘목수 김씨’로 살아왔다. 1년에 한 번 꼴로 그가 서울 인사동에서 연 ‘목수 김씨 전’에서 사람들이 본 것은 정직하고 솜씨 좋은 무명의 목수 김씨가 깎아 내놓은 정겨운 목물이었다.

경기도 청계산 자락에 터를 잡고 1년을 하루같이 연장을 손에서 놓지 않는 그는 그 노동으로 쌀을 팔아 생계를 꾸려가는 삶을 타고난 목수처럼 지켜왔다. 김진송씨를 재능 넘치는 전시 기획자로 기억하거나 몇 년 전 펴낸 문제작 '서울에 딴스홀을 허하라'의 지은이로 아는 이들에게 그는 천연덕스럽게 인사한다. "목수 김갑니다."

그 김씨가 소담한 책 한 권을 내밀었다. '김진송 깎고 씀'이라는 곁말이 붙은 '나무로 깎은 책벌레 이야기'(현문서가)다. 올 한 해를 꼬박 나무일에 매달려 2백여점이 넘는 괴기한 인형과 벌레.풍경들을 추수한 그는 그 소회를 이렇게 적었다.

"어느 날 커다란 나무토막이 하나 작업실에 덜커덩 하고 굴러 들어왔다… 한동안을 도무지 말이 안 되고 터무니 없는 세상 속으로 들어가 꼬물거리는 벌레처럼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며 보냈다"로 시작하는 이 후기에서 그는 "나를 지배하고 있는 질서를 전복시키거나 아니면 회복시키는 즐거움 혹은 '터무니없음'을 빌미 삼아 뭔가를 뒤집어 보고 싶은 충동"을 털어놓고 있다.

모두 5장으로 나누어 김씨가 만든 나무 인형과 쓴 글을 엮어 놓은 이 책은 때로 우화집으로, 때로 잠언집으로, 또는 외계에서 날아온 상상의 날개로 보인다.

책 속에서 기어나오는 진짜 책벌레를 만나는 책벌레 아이로부터 책의 바다에 잠겨 세상을 잊은 아이까지, 이곳에 담긴 낯선 짐승들과 인간들은 우리가 잊고 있었던 낯선 경지의 문을 열고 들어가는 비밀 통로가 된다.

현세에서 쓸모없는 물건이라 여겨질 이 기기묘묘한 영혼들 속에 머물며 김씨는 그들이 속삭이는 한마디를 들었다. "제발 세상을 하나의 눈으로만 보지 마."

지구에서 살아남기 위해 진땀 나게 지구에 찰싹 달라붙어 있는 아이, 생각이 싹처럼 자라는 바위에 앉아 있다가 놀라 도망친 그녀, 한눈을 팔다가 그만 하늘에 갇혀 버린 새, 바그다드에 세워진 승리자의 새 동상, 그림자에 놀라 그림자를 내동댕이쳐 버린 아이 등 정교하게 깎은 나무 인형들이 보는 이를 자극하는 상상력은 섬뜩하면서도 즐겁고 유쾌하면서도 슬프다.

김씨 스스로 고백했듯 "그게 그저 그런 나무가 아닌 줄 진작에 알아보았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나무 인형들로 꾸민 김씨의 이 이상한 나라에 간 독자들 또한 그저 그런 나무가 아닌 줄 알고도 계속 책 속에 빠져 책벌레가 되고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지 모를 일이다.

목수 김씨는 이 책에 실은 작품과 그 양만큼 작업실에 남아 있는 나무 인형들을 모아 내년 2월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한 달동안 전시회를 열 예정이다. '나무로…'는 인터넷(www.namustory.com)에서도 만날 수 있다. 02-723-2961.

정재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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