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명품' 장인 "쫄면이 먹고 싶네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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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란셀 씨가 지난달 28일 신세계백화점 본관 개관 기념으로 열린 에르메스 가방 제작 시연 행사에서 ‘버킨 백’을 만드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쫄면이 먹고 싶어요."

가방 한 개에 수백만원대에서 수억원대에 이르는, 세계에서 가장 비싼 수제품인 에르메스 가방을 만드는 장인 파스칼 란셀(42)의 말은 뜻밖이었다. 이 프랑스 남자가 또박또박 한국말을 하는 것도 그랬지만 '쫄면'은 더 의외였다.

그는 서울 충무로 신세계백화점 본관이 재개관하면서 입점한 에르메스 이벤트를 위해 지난달 24일부터 9박10일 일정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지난달 28일부터 닷새 동안 1층 매장에서 에르메스의 대표적 가방인 버킨백을 만드는 과정을 시연하는 것이 그의 일. 능숙하게 한국말을 구사하는 그이지만 한국에 일곱 번 방문한 게 전부인 토종 프랑스인이다. 15세 때 프랑스 파리에 있는 에르메스 가죽장인 학교에 입학한 뒤부터 27년 동안 가방을 만드는 일 외에는 외도한 적이 없다. 그런 그가 한국말에다 떡볶이.김밥까지 한국 음식까지 정통하게 된 것은 그의 유별난 한국 사랑 때문이다.

"하루 종일 앉아서 일하다가 문득 운동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파리에 있는 태권도장을 찾았습니다. 거기서 태권도로 몸을 단련하면서 한국을 어렴풋이 알게 됐습니다."

그게 17년 전이었다고 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그는 태권도 수련을 하고 있다. 그는 도장에서 친해진 한국인 태권도 사범과 함께 13년 전쯤 한국 여행을 왔다가 한국에 홀딱 반했다. 그는 엉뚱하게도 "횡단보도 신호등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감동적이었다"고 했다. "아무 데서나 길을 건너는 프랑스 사람들과 달리 한국인들의 질서의식이 아름다웠다"는 것이다. 프랑스인들에 비해 한국인은 부지런하고 겸손해 보여 더욱 마음에 들었단다.

그는 이 여행 이후 독학으로 한국어 공부를 시작했다. 서점에서 한국어 교본을 사와 퇴근 후 두 시간씩 공부하고 태권도 사범과 한국말을 연습했다. 2002년엔 한국어 학원을 다니기 위해 두 달 동안 장기휴가를 내고 한국을 찾았다. 파리로 돌아와서 만난 한국인 여자친구와 지금까지 사귀고 있다.

이 같은 그의 '한국 사랑'은 회사 안에서도 유명하다. 이 때문에 그는 회사에서 이벤트로 세계 매장에 내보내는 시연회 행사요원으로 한국에만 세 번째 왔다. 에르메스는 장인들에게 다양한 세계 시장을 경험하게 하기 위해 한 번 갔던 장소에 다시 내보내는 일이 없는데 그에게만 예외였다. 에르메스 측 관계자는 "그는 지난 행사에서도 아시아 지역의 가장 까다로운 고객인 한국 소비자들에게 한국말로 가방 만드는 법 등을 소개해 인기를 끌었다"고 설명했다.

그에게 어떻게 하면 좋은 장인이 될 수 있는지 물어봤다. 그는 자신의 손을 펴보이며 "손재주를 타고 나야죠"라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인생이 재미있다고 했다. "에르메스 가방은 대부분 주문 제작이어서 항상 조금씩 다른 모양의 가방을 만들어 지루할 틈이 없다"고도 했다. 인생이 재미있는 그의 꿈은 '은퇴 뒤 한국에서 사는 것'이었다.

☞◆에르메스=1837년 프랑스 파리의 마구상(馬具商)에서 출발해 가방 등 가죽제품으로 유명해진 세계적 패션 명품 브랜드. 수제품을 만드는 사람들을 장인으로 부르며, 프랑스 본사에 소속된 장인은 500여명이다. 모두 '에르메스 가죽장인 학교'에서 3년간 수학한 뒤 1년의 실습을 거친 뒤 현업에 투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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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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