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정·경에 선거망국 동시 경고/노 대통령 “불법엄단” 속뜻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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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계파이해 얽힌 40여지구 분규 진압신호/임기종반 안정­경제부담 최소화도 겨냥
정부·민자당이 14대 총선을 겨냥한 사전선거운동을 원천봉쇄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거듭 천명하고 있어 주목되고 있다.
노태우 대통령이 18일 김영삼 민자당대표최고위원과의 주례회동에서 『최근 과열조짐을 보이고 있는 사전선거운동을 여당이 앞장서서 진정시키라』는 특별지시와 『이를 어기는 당소속 의원과 당원에 대해서는 엄중한 책임을 묻겠다』는 경고메시지를 강한 톤으로 전달한데서 잘 나타나고 있다.
노대통령의 이날 발언은 문면상으로는 여당의원과 소속 당원을 지칭하고 있지만 행간에 담겨있는 속뜻은 여야를 불문한 정치권 전체를 겨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노대통령의 이같은 엄단배경에는 민자당내에서 공천을 둘러싼 조직분규가 심한 지역이 늘어날 뿐만아니라 당의 지시가 먹혀들지도 않는 상황이 조성되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김영삼 대표나 김윤환 사무총장은 노대통령에 대한 여러차례의 당무보고 등을 통해 일부 과열 및 조직분규지역의 조기정리를 건의했을만큼 당내사정이 복잡하다. 다수의 중진의원들도 수뇌부에 강력한 조처의 필요성을 강조해 상당한 공감대가 형성돼 있었다.
이런 현상은 ▲전국구·지역구의원간의 사생결단식 대결 ▲3당합당으로 인한 3계파간의 알력 ▲5공·6공세력의 대결양상 ▲신진인사의 기반확대 등으로 더욱 심화됐다는 지적이다. 때문에 중앙당의 자제촉구 정도의 지시가 먹혀들지 않아 전국적으로 40여개 이상의 지역에서 심한 마찰을 빚고 있다는 자체평가다.
예컨대 5,6공세력이 날카롭게 맞붙고 있는 충무­통영­고성·진주·안동 등이나 신진의 이명박 현대건설회장이 뛰고 있는 서울 강남을 등이 대표적 사례로 꼽히고 있다.
당내 대결상을 보이는 용인·대구 수성·달성­고령·안동시 등의 지역은 전국구의원이 현역의원들을 밀어내거나 분구를 겨냥해 오래전부터 세확보에 앞뒤가리지 않고 뛰어 중앙당의 골칫거리가 돼왔다. 또 서울등 수도권지역과 강원·충청·부산·경남지역에서는 3계파간의 알력이 도처에서 나타나 공조직 붕괴현상마저 보이고 있다는 진단이다.
이에 따라 여권수뇌들은 이들 지역에서 현저하게 질서를 문란시켜온 일부 대상자들을 공천에서 배제키로 하고 그런 단계로 사정차원의 칼을 들이대기로 의논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여권실세들은 이같은 현상을 그냥 방치했다가는 집권말기의 권력누수현상까지 겹쳐 노대통령의 정치일정관리에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초래될 것을 한층 염려하고 있다.
청와대측은 14대총선에 노대통령이 김영삼·김종필씨와 공천을 충분히 협의는 하되 상당한 재량권을 행사하고 그것을 토대로 차기집권의 조정력을 발휘하도록 구상하고 있다.
이에 따라 청와대측은 이미 여러기관을 통해 두세차례 내부검진을 실시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분규현상이 확산되고 잇따른 경고에도 출마희망자들이 멋대로 움직인다면 청와대의 구상 자체가 실효성을 잃게될 것은 불을 보듯 훤해진다.
따라서 노대통령은 이것을 총선거의 초기단계에서 확실하게 고삐잡을 필요성이 절실해져 검·경을 포함한 사정기관을 총동원,사전선거운동의 단속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고위소식통은 『명백하게 혐의가 잡힌 경기도의 K모의원을 포함해 몇몇 민자당인사들과 여당공천을 노리고 조직확대를 꾀해온 L모씨 등을 포함한 당외인사에 대해 정밀내사를 벌이고 있다』고 말하고 『그중 4,5명은 선거사범 구속대상으로 검토되고 있다』고 밝혔다.
일부 인사에 대해서는 자금출처 조사까지 병행한다는 계획으로 알려졌다.
또다른 요인은 현재 말을 못꺼내고 있지만 경제사정이 원래 나쁜상황에 일선에서의 과열선거 분위기가 이미 한계수위를 넘어 경제난을 가중시킬 것이라는 판단도 크게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청와대와 민자당이 지난달 전국 2백24개 지구당에 대한 점검결과를 토대로 강경조치의 필요성을 건의한바 있다. 그러나 각계파간의 이해까지 미묘하게 걸린 공천경쟁·사전선거운동을 정부·민자당이 제대로 가려낼지는 의문이다.<문일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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