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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책갈피] 그림 한폭, 시 한편에 문인의 한숨 한가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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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팔대산인의 ‘두 마리 구관조’(사진 위의 왼쪽), 당인의 ‘추풍환선사녀도’(사진 위의 오른쪽)와 공개의 ‘수마도’(사진 아래). 이민족 지배 하에 괴로운 심경이나 황제의 총애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담은 것으로 풀이된다. [시공사 제공]

시와 그림으로 읽는 중국역사

이은상 지음, 시공사, 287쪽, 1만4000원

"대나무는 차가우나 빼어나고, 나무는 여위지만 오래 견디고, 바위는 흉하지만 문채를 이룬다. 이들을 '세 가지 이로운 벗'이라 한다. 깨끗하나 가까이 할 수 있고, 아득히 멀리 세속에 초연하니 구속받지 않는다. 나는 이러한 사람이 그립구나. 아하! 이러한 사람을 다시 볼 수 있을까?"

북송 시대 문인 문동(文同)의 그림 '묵죽도'에 실린 소동파의 글이다. 대나무는 고결함과 굳건함을, 고목은 생존을, 바위는 인내를 뜻한다. 그러나 일찍부터 군자에 비유되던 대나무가 문인 화가들의 시선을 끌기 시작한 것은 북송 때였다고 한다. '묵죽도'만 해도 보수파였던 문동이 개혁파의 박해를 받자 척박한 환경에서 꿋꿋하게 휘어진 대나무에 자신을 의탁한 그림이란 설명이다.

예로부터 중국의 전통회화엔 제화(題畵)라 해서 글이 빠지지 않았다. 그리고 중국문학을 전공한 지은이는 중국의 전통회화엔 예술적 의미뿐만 아니라 천자를 도와 천하를 교화하려던 문인들의 소망과 좌절이 담겼다고 보았다. 이 때문에 그림과 그 제화들을 분석하면 중국사의 어두운 그림자를 들여다 볼 수 있다고 주장한다.

명나라 중기 엘리트 화가인 당인(唐寅)의 '추풍환선사녀도'를 보자. 스산한 가을바람이 부는 새벽, 어울리지 않는 둥근 부채를 든 궁녀는 한나라 성제 시절 왕에게 버림받은 궁녀 반소가 주인공이다. 4세기 무렵 동진에서 활약한 고개지의 '여사잠도'에서 비롯된 소재인데, 보기는 화사하지만 임 계신 소양궁을 바라보는 모습은 임금의 총애를 갈구하던 문인들의 아쉬움이 담겼단다.

원 대의 화가 공개는 갈비뼈가 드러날 정도로 앙상하게 여윈 말을 즐겨 그렸는데 그의 '수마도(瘦馬圖)'에는 "구름과 안개가 천관에 내려온 뒤로 이전 왕조의 열두 곳 황실 마굿간이 비어 있다…"는 제화가 함께 한다. 천관은 하늘의 문으로 왕을, 구름과 안개는 무언가 좋은 것을 가리는 부정적인 것을 상징하므로 '구름과 안개가 천관에 내려온 뒤로'란 구절은 '이민족 몽골이 중국을 지배한 뒤로'란 뜻이란다.

중국 미술사에서 가장 뛰어난 화가로 손꼽히는 팔대산인(八大山人)의 그림'새와 바위'나 '두 마리 구관조'에 등장하는 새는 본인을 형상화한 것이라 한다. 불안한 나뭇가지 위 또는 큰 바위 밑에서 움츠린 채 화난 눈으로 하늘을 노려보거나 날개 속에 부리를 파묻고 눈을 감은 모습이, 명 나라 왕족출신으로 자신의 땅에서 뿌리를 잃고 이방인으로 살아야 했던 화가 자신의 심정과 같다는 설명이다. 원나라 때 정사초의 유명한 뿌리없는 난 그림 역시 흙을 아예 제거함으로써 몽골이 강탈한 흙에 뿌리내리기를 거부하는 심정을 표현했다고 풀이한다.

고대 중국 상나라 때 거북 뼈에 글을 새겨 점을 치던 이름없는 정인(貞人)에서 청(淸)대 괴짜 화가 석도까지 중국 전통회화와 그 제화를 다룬 이 책은 중국미술사나 예술론은 아니다. 오히려 그림과 제화를 통해 문화예술의 변화는 물론 시대의 흐름, 역사적 사건들을 짚은 중국사 엿보기에 가깝다. 그림 한 폭에 담긴 깊은 뜻을 헤아리다 보면 중국 역사가, 그리고 문인들의 숨결이 한층 가까이 다가온다.

김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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