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책읽기] 이브 생 로랑이 그린 유일한 만화책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0면

발칙한 루루

이브 생 로랑 지음, 최정수 옮김, 이다미디어,128쪽, 1만2000원

다음이 누구의 악행인지 맞혀보시라. "초상난 데 노래하기, 불붙은 데 부채질하기, 잠든 놈에 뜸질하기, 우는 아이 똥 먹이기, 장독간에 돌 던지기………."

감(感)이 오시는가. '흥부전'에 나오는 놀부의 못된 심보다. 그렇다면 다음 악행의 주인공은.

"교실에서 아이들 책 찢기, 화단에 들어가 춤추기, 아이들 배에 공기 집어넣기, 남의 애인 빼앗기, 젖먹이에게 포도주 물리기………"

놀부 뺨치는 경지다. 이만한 가학 취미도 없다. 놀라지 마시라. 모두 소녀(나이 미상)의 짓이다. 소녀의 이름은 루루. '발칙한'이란 형용사를 달고 다닌다. 영화 제목 그대로 '엽기적인 그녀'다. 친구라고는 흰쥐 한 마리. 게다가 외모도 볼품없다. 부댓자루 수준이다. 또 '꼴'에 요염한 자세를 뽐낸다. 모차르트 음악, 진귀한 요리도 즐긴다. 천방지축.좌충우돌의 루루. 상대 눈치보기, 그의 사전에 그런 것 없다. 예쁜 것, 고운 것, 콧방귀 대상이다. 더 놀라운 게 있다. 루루가 밉지 않다는 것이다. 욕심꾸러기 놀부와 분위기가 다르다. 이유가 있다. 루루는 모험가다. 학교든, 병원이든, 수도원이든, 극장이든, '틀'을 깬다. 어렵게 말해 가치관을 전복한다. 예술의 목적과 통한다. 따분한 일상도 루루가 끼어들면 유쾌한 반란이 된다. 루루는 그 유명한 패션디자이너 이브 생 로랑(71)의 창조물. 신간은 그가 남긴 유일한 만화책이다. 검정.하양.빨강의 대비가 강렬하다. 킥킥 웃음이 터진다. 주의사항 하나, 절대 따라하지 마실 것. 큰일난다.

박정호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