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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적위주 단속」 실효의문(범죄와의 전쟁 1년: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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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적발 늘어도 발생 안줄면 무의미/범죄유발환경 척결에 주력해야
『악성범죄의 배후에는 반드시 열악한 환경이 도사리고 있다』는 범죄심리학의 격언을 되살리지 않더라도 「범죄와의 전쟁」을 효율적으로 치러내기 위해서는 범죄를 유발시킬 수 있는 제반 환경요인,즉 범인성환경에 대한 척결이 선행돼야 한다.
유흥업소를 둘러싼 조직폭력배들간의 빈번한 암투로 빚어지는 사건에서 보듯 밤만 되면 불야성을 이루는 유흥·환락업소들은 범죄자들의 가장 좋은 「먹이」이자 편안한 은신처의 구실을 하기 때문이다.
「범죄와의 전쟁」 1년동안 이같은 범인성 환경에 대한 단속과 지도는 적어도 물량면에서 볼 때 괄목할만한 성과를 거둔 것이 사실이다.
경찰청에 따르면 심야영업단속의 경우 89∼90년사이 7만4천6백39건이던 단속건수가 범죄와의 전쟁이후 1년간은 무려 1백65%가 늘어난 19만7천5백45건으로 하루평균 5백61개 업소가 적발됐을 정도다.
전쟁 1주년을 3일 앞둔 10일 오후 11시50분 유흥업소가 밀집한 서울 이태원동에는 관할 용산경찰서에서 2백50명,용산구청에서 80여명등 3백명이 넘는 단속반이 나와 술집입구마다 2명씩 배치됐고 거의 모든 업소가 자정이전에 문을 닫아 한적한 분위기였다.
주말이면 무려 5백명이 넘는 단속반이 투입되는데다 암행반원들은 손님을 가장,업소에 들어가 퇴폐·시간외영업·비밀통로가 있는지 여부를 조사하는 등 과거와 달리 「철저한 단속」이 이뤄지고 있다.
서울 방배동 카페골목의 경우 지난해 1백13개이던 유흥업소가 금년 9월 53개로 절반이하로 줄었고 60개의 업소가 의류점·잡화점으로 업종을 바꾸는 등 유흥업소와 종업원수가 뚜렷이 감소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당국은 지난해와 비교할때 매월 29만㎘이던 술 소비량이 23만㎘로 21% 줄었고 유흥업소의 전력소비량도 크게 감소했다고 밝히고 있다.
이밖에 풍속영업의 규제에 관한 법률이 제정돼 만화가게·전자오락실·비디오가게·소극장 등 그동안 무방비상태이던 청소년출입업소들에도 단속이 강화됐고 미성년자보호법의 개정으로 청소년들의 오후 8시이후 유흥업소 밀집지역 출입도 금지됐다.
그러나 「범죄와의 전쟁」 1년간의 「비상한 조치」들과 가시적·물량적 효과에도 불구,이같은 조치들이 과연 얼마나 범죄를 척결하는데 기여했느냐에 대해선 회의적인 분석도 많은게 사실이다.
무엇보다 이같은 무더기·투망식 단속과 검거가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일선공무원들 사이에선 매일밤마다 수백∼수천명씩 투입되는 단속업무때문에 다음날의 정상적인 대민업무가 마비될 지경이라는 불평이 일고 있으며 「전쟁」 1주년을 앞두고는 성과를 가시화하라는 상부의 지시에 따라 이같은 본말전도현상이 더욱 심각해졌다는 것이다.
시민·재야단체사이에선 「범죄와의 전쟁」이 6공의 정치적 목적이 바뀌어도 계속될 것이냐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보이고 있고 범죄에 대한 중형·단속주의로 일관하는 것은 이미 60년대 구미에서 실패로 끝났다는 지적도 있다.
결국 「시민들이 보다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보다 근본적인 범죄의 배경이 되고 있는 ▲부의 불평등구조 ▲한탕주의 ▲황금만능풍조가 먼저 개선되어야 하며 이는 결코 경찰력만으로 다스려질 수 없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범죄의 사회구조적·문화적 배경을 고려할때 시민·정치권 모두가 보다 넓은 의미의 범인성환경들에 대한 근본적인 치유에 나서야 하며 「건강한 사회」를 만들려는 모두의 노력과 행정력이 조화를 이룰때만이 비로소 범죄에 대한 진정한 승리가 가능하다는 지적을 되새겨야 할 것이다.<김종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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