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왕적 대통령제'용어 창안 … 과도한 권력집중 폐해 지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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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미국의 대표적인 역사가이자 사회 비평가인 아서 슐레진저 주니어(사진)가 지난달 28일(현지시간) 세상을 떠났다고 뉴욕 타임스 등 미국 언론이 1일 보도했다. 89세.

슐레진저는 1960년대 리처드 닉슨 행정부 시절 미국 대통령제의 특징을 분석해 '제왕적 대통령제(imperial presidency)'라는 말을 창안한 것으로 유명하다. 대공황과 제2차 세계대전을 겪은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 시절 기능이 크게 강화된 백악관 비서실이 50년대 이후 지나친 권력집중으로 갖가지 문제를 일으킨 것을 빗댄 용어다.

그는 미국의 정치.문화.사회에 대한 폭넓은 지식을 바탕으로 20세기 대표적인 자유주의 사상가로 꼽혀 왔다. 대표적인 자유주의 지도자로 뉴딜 정책을 편 프랭클린 루스벨트와 미국의 이상을 강조한 존 F 케네디, 그리고 제7대 앤드루 잭슨(재임 1829~1837) 전 대통령을 꼽았으며 케네디를 가장 흠모했다.

이와 함께 만년까지 날카로운 비판으로 미국 사회에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한 논객이기도 했다. 98년 공화당이 성추문을 빌미로 빌 클린턴 당시 대통령의 탄핵을 시도하자 "온당하지 않다"며 이에 반대하는 여론을 주도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예방적 전쟁' 개념을 들고나와 이라크 등을 공격하려 하자 "이는 미국이 국제사회의 재판관.배심원.집행관을 동시에 맡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50년대부터 "분쟁 없는 세상은 환상 속에나 있는 것"이라고 지적하면서 자유주의 사상을 바탕으로 하는 국내 정책과 반공주의에 입각한 대외정책을 강조했다. 이와 관련, "미국이 살아남으려면 아이디어와 비전, 그리고 용기가 있어야 한다"는 말을 남겼다.

현실 정치에도 개입해 자유주의 단체인 '민주 행동을 위한 미국인(ADA)'의 창설을 지원했다. 60년에는 존 F 케네디 당시 대통령의 특별보좌관을 맡았다.

슐레진저는 17년 오하이오주 콜럼버스에서 역사학 교수의 아들로 태어나 38년 하버드대를 우등으로 졸업했다. 제2차 세계대전 때는 전시정보국을 거쳐 중앙정보국(CIA)의 전신인 전략정보국(OSS)에서 정보분석가로 일했다.

45년 앤드루 잭슨 전 대통령을 자유주의 지도자로 부각한 '잭슨의 시대(The Age of Jackson)'와 66년 케네디의 재임 시절을 상세하게 다룬 '1000일(A Thousand Days)'로 두 차례 퓰리처상을 받았다. 박사학위 없이도 하버드대와 뉴욕시 대학원의 역사학 교수를 지냈다.

채인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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