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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부전나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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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김진국
김진국 기자 중앙일보 대기자·칼럼니스트
개미는 페로몬이라는 냄새 신호로 의사소통을 한다고 한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개미'에서는 페로몬으로 사랑까지 나눈다. 페로몬에 대한 확신 때문에 부전나비 애벌레를 자기 애벌레로 착각하기도 한다. '색 헝겊으로 만든 작은 병 모양의 노리개'인 부전처럼 색이 고운 작은 나비다. 그러나 애벌레는 개미 애벌레와 흡사하다. 몸에서 내뿜는 화학물질마저 하도 닮아 개미가 깜빡 속는다.

고운점박이푸른부전나비가 오이풀에 알을 까 부화하면 뿔개미는 자기 애벌레로 알고 물고 간다. 애벌레는 '배고프다'고 응석을 부려 일개미들이 부지런히 먹이를 날라오게 하고, 개미굴을 돌아다니며 개미알도 훔쳐 먹는다. 성충이 되어서야 개미집을 날아나온다. (최재천, '인간과 동물')

뻐꾸기의 탁란(托卵)과 비슷하지만 개미는 스스로 부전나비 애벌레를 집으로 물어간다는 게 다르다. 일본 왕개미처럼 담흑부전나비 애벌레가 흘리는 단물 맛에 취한 경우도 있다.

요즘 선거판을 보면 영락없이 남의 애벌레를 찾아 헤매는 일개미 꼴이다. 열린우리당 의원들은 노선상 거리가 먼 인물만 쫓아다닌다. 몇 년째 나서 있는 당내 예비후보는 뒷전이다.

정치적 정체성조차 불분명한 고건 전 총리를 쫓아다니며 당마저 쪼갰다. 이유는 한 가지, 여론조사에서 지지도가 높다는 것이다. 고건 나비가 훨훨 날아가 버리자 이번에는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을 쳐다본다. 심지어 불개미 굴에 있는 손학규 전 경기지사에게까지 러브콜을 보낸다. 선거에서 이겨야 한다는 욕심에 취해 분별력을 잃어버렸다.

노선이나 정책은 관심도 없다. 부전나비가 나오건 개미가 나오건 상관도 않는다. 선거에서 이길 가능성만 따진다. 그럴 거라면 왜 정당을 만들었을까. 자신들이 찾는 그 후보가 당선돼야 하는 이유를 스스로는 납득하고 있을까. 대선 승리의 단물을 마시고 싶다고 부전나비 애벌레를 물어갈 일은 아니다.

한나라당이라고 다르지 않다. 후보 간 정책 대결은 보이지 않는다. 논쟁을 벌여봐야 결론을 내기 어려운 거대 사업만 상징처럼 던져놨을 뿐이다. 특정 후보를 지지하는 이유도 정책이나 리더십보다 당선 가능성에 좌우된다. 이 당이나 저 당이나 이기는 것이 최고선이다. 도덕성도 따져야 하지만 비전과 정책 대결이 벌어져야 다음 5년이 희망이 있다. 정책 대결을 통해 후보들은 서로 영향을 받고 닮아간다. 국가적 목표와 정책에 대한 수렴 과정이다. 이것이 빠지면 검증되지 않은 돌출정책이 쏟아질 수밖에 없다.

김진국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