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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결단의 순간] “병원 불지르고 감옥 가려 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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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 2002년 가을 부인과 함께 강원도 오대산 적멸보궁을 오를 때만 해도 백용기(52) 이사장은 “모든 것이 끝”이라 생각했다. 거제 백병원 직원에겐 병원에 있는 환자를 옮길 다른 병원을 물색해놓으라는 말과 함께 휘발유를 준비하라고 지시한 상태였다.

갈라민 주사제 사건이 터진 것은 2002년 10월 2일. 거제백병원 정형외과에 입원한 환자 18명이 K제약 갈라민(근육이완제) 주사제를 투여받은 후 집단 패혈증 증세를 보여 1명이 사망한 사건이었다. 이 사건은 전국에 일파만파로 퍼졌다.

사고의 진상이 밝혀지기까지 15일은 백 이사장에게 피를 말리는 시간이었다. 사고가 병원 내 전염에 의한 사고로 추측되면서 모든 비난의 화살이 거제 백병원을 향해 쏟아졌다. 보름간 TV 뉴스를 통해 보도된 것만 200회가 넘었다.

백 이사장이 99년 부도 위기에 몰렸던 거제 백병원의 이사장에 취임한 후 3년 만에 일어난 가장 큰 사건이었다. 이때 처음으로 그는 절망을 느꼈다. 쓰러져 가는 병원을 인수하는 것을 주변에서 모두 반대해도 꿋꿋이 지켜왔던 그였다.

산행은 마지막 결단을 내리기 위해서였다. 무조건 병원 책임으로 몰아가는 상황이 너무 억울해 방화죄로 구속될 것을 각오하고 전염균이 나돈다는 병원에 불을 놔버릴 생각을 한 것이다. 하지만 사태는 사고가 일어난 지 보름 만인 바로 그날 역전됐다.

산을 내려오다 들른 음식점 TV뉴스에서 “갈라민 주사제 사고의 원인이 거제 백병원이 아닌 K제약이 공급한 앰플에 대장균이 검출된 것으로 판명났다”는 보도가 흘러나온 것이다. 뉴스를 지켜보던 부부의 눈엔 눈물이 흘러내렸다. 지난 3년간 병원 정상화를 위해 노력한 그를 하늘이 도운 사건이었다.

“빚투성이 병원 인수해서 뭘 하나”

백 이사장이 병원에 투자하기로 결심한 것은 오랜 꿈이었다. 그는 노인 인구의 급속한 증가에 따라 노후생활 안정을 위한 실버산업 육성에 몸을 바치고 싶었다. 거제 백병원은 그 전초기지가 되는 셈이다. 그러나 99년 이사장 취임 당시 거제 백병원의 상황은 심각했었다.

자금난으로 200여 명의 직원들은 7개월째 급여가 밀려 있었고, 오랫동안 주인 없는 병원이라 시설은 낙후했으며, 실력 있는 의사를 구하기도 힘든 상황이었다. 게다가 백 이사장이 병원을 인수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병원 내 유언비어가 돌기도 했다.

돈 많은 사람이 와서 병원을 인수한 후 헐값에 넘겨버릴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직원들이 백 이사장에게 가진 반감의 골이 깊을 수밖에 없었다. 외부의 시선도 곱지 않았다. ‘될 수 없는 병원이니 마음을 접어라’ ‘생활보호 대상자들만 오는 병원에 무슨 미래가 있겠나’ 등등.

거제도에 있는 지인들은 한사코 백 이사장의 결정을 무모하다고 했다.

백용기 이사장은…
1955년생. 서울시립대 법학과 졸업. 의료·교육·봉사·문화 등 사회발전을 위한 사업을 의욕적으로 펼치고 있다. 89년엔 국내 최초의 오토 캐드(Auto CAD) 전문 공식교육기관인 컴퓨터 아카데미 ‘태백학원’을 설립했다. 94년엔 방송·영상인력 양성기관인 ‘신태백 컴퓨터학원’을, 98년엔 치과 프로그램 등 소프트웨어 개발을 목적으로 ㈜토보콤을 설립했다. 99년 거제 백병원 의료재단인 거붕의료재단 이사장으로, 2005년엔 학교법인 거붕학원(경기 화성 소재 화도중학교)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돈 버는 재주보다는 돈 쓰는 재주가 더 많다’고 말하는 그는 선친으로부터 물려받은 재산 덕에 병원·육영재단 등 모두 돈벌이와는 먼 비영리 쪽에 투자를 지속적으로 해왔다.

“단 한 사람도 찬성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도대체 섬에 있는 빚투성이의 병원을 인수해 무얼 하겠다는 거냐고 말렸죠. 그런 얘기를 들으니 더 오기가 생겼습니다. 어차피 병원 사정이 최악이라면 무슨 짓을 해도 욕은 안 먹을 거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 와중에 모 기업체에서 그에게 투자한 금액의 3배를 지불하겠으니 넘기라는 요청이 왔다. 그래도 꿈쩍도 하지않자 5배의 금액을 불렀다. 그 돈이면 당시 강남 테헤란로에 20층짜리 빌딩을 살 돈이었다. 하지만 그의 결심은 흔들리지 않았다.

“공중보건의는 안 받겠다”

1인당 국민소득이 700~800달러인 시절 선교사가 와서 건립한 병원을 돈 때문에 팔 수는 없었단다. 게다가 거제 백병원은 지역 사회에 미친 영향도 컸다. 직접 예방접종을 통해 보건예방 사업의 효시를 마련했으며 79년 종합병원이 된 이후 지금까지 20만 거제 시민을 위한 건강의 동반자로 함께했던 것.

“거제도는 더 이상 도서벽지가 아닙니다. 포로 수용소가 있는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고, 거제 조선소 등 산업메카가 있는 상징적인 곳이기도 하죠. 게다가 한국의 슈바이처로 불리던 장기려 박사가 재직했던 곳이지 않습니까? 지역의 트레이드 마크가 돼버린 거제 백병원을 꼭 제 손으로 부활시키고 싶었습니다.”

그는 이사장으로 취임한 직후 세 가지 결심을 했다.

첫째, 아무리 회사가 어려워도 직원 급여는 단 하루도 밀리지 않고 꼬박꼬박 주겠다. 둘째, 컨테이너 박스 안에 있는 허름한 장례식장을 허물어 새로 짓고 최신식 MRI 시설을 도입하는 등 병원 설비 투자에 돈을 아끼지 않겠다. 셋째, 취임 후 3년간 아무리 어려워도 병원을 떠나지 않겠다.

이 약속은 그대로 지켜졌다. 의사들의 월급도 동종업계와 비교해 톱 수준을 유지했다. 대우가 좋다는 소문이 나자 특정 지방대학 출신 의사가 대부분이었던 병원에 서울의 명문대 의사들도 찾아왔다. 처음엔 등을 돌리던 직원들도 백 이사장의 진심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시키지도 않은 병원의 장기 비전에 대해 보고서를 자체적으로 만들어 오는 등 열성을 보였다.

이런 와중에 갈라민 주사제 약 사고가 터진 것이다. 취임 후 3년 동안 이룬 병원 정상화가 물거품이 돼버릴 수도 있는 사건이었다. 다행히 거제 백병원의 잘못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지만 이 일이 있은 후 다시 정상화되기까지 꼬박 1년 2개월이 걸렸다.

백 이사장은 2005년 공중보건의를 받지 않겠다고 선언해 주목을 받기도 했다. 공중보건의는 급여는 적게 주어도 됐지만 나이가 젊고 군인이라 대부분 책임의식 등이 전업 의사들보다 약했다. 몇 번 공중보건의들의 무책임한 시술이 행해진 것을 안 백 이사장은 경남도청에 아예 공중보건의 자체를 안 받겠다고 선언한 것.

당시 병원장은 “의사가 없으면 병원이 망한다”고 만류했지만 백 이사장은 꿈쩍하지 않았다. “무책임한 의사가 있는 것보다 차라리 없는 것이 낫다”는 판단에서였다.

이 선언으로 5명의 공중보건의, 2명의 일반 의사 등 7명의 의사들이 집단 사퇴했다. 이 과정에서 또다시 한 달에 7억~8억원의 매출 급감이라는 고통을 감수해야 했다. 하지만 그는 시련 속에서도 100여 명의 직원들을 대만의 포모사 병원으로 해외 시찰을 보내는 등 설비와 직원들에 대한 투자 약속을 어기지 않았다.

올 3월 2일엔 거제 백병원에 경사가 있었다. 전 부산대학교 병원장과 부산의료원 원장을 역임했던 류총일씨가 제 17대 병원장으로 취임한 것. 백 이사장은 “류 원장의 취임으로 마음의 짐을 덜었다” 며 “일평생 의료인의 길을 걸어오신 류 총장은 거제 백병원의 비전을 만들어갈 적임자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99년 말 연 75억원이었던 병원 매출은 2005년 300%가량 성장했다. 올해는 주변에 산업체 종사자들이 많은 점을 고려해 정형외과나 신경외과 등 외과센터를 강화하고 중환자실과 특수검진실을 최신식으로 지을 계획이다.

“새 병원장 취임으로 직원들의 사기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이런 추세라면 올해 안에 줄곧 마이너스였던 병원 순이익을 ‘이븐’으로 만드는 목표가 가능할 것 같습니다.”

현재 백 이사장은 ‘실버타운’을 조성하기 위한 부지를 매입 중이다. 거제 백병원 주변 토지 매입을 시작으로 충청도, 경기도 등에도 실버타운을 지을 계획이다. 그의 결단은 여러 차례 시련을 거쳤지만 지금은 더 큰 꽃을 피우고 있는 셈이다.

박미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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