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년의 은막 스타 문희씨 장애인 도우미로 '아름다운 외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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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은퇴한 지 36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저를 기억하고 사랑해주시는 분들이 많아요. 과분한 사랑을 사회 봉사활동으로 갚으려 합니다."

1960년대 정상의 여배우 문희(60.사진)씨가 장애인 도우미로 나섰다.

그녀가 장애인 뮤지컬 '위드 러브'의 제작 후원회인 '미라클 피플'의 홍보대사를 맡은 것이다.

가수 조용필, 성악가 김동규씨 등 각계 인사 40명이 회원인 '미라클 피플'은 장애인 전용 사우나와 소극장.공연장 건립을 위해 지난 26일 발기 모임을 가졌다. 회원들은 이날 건립기금과 공연 자금 조성에 앞장서고 홍보에 적극 나설 것을 결의했다.

문씨가 공개 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나이가 믿기지 않는 미모와 소녀같은 수줍음은 여전했다.

"제가 워낙 나서는 성격이 아니라 이런저런 제안을 고사해왔어요. 하지만 장애인 문제만큼은 달랐어요.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고, 육체적 장애는 없지만 정신적 장애를 가진 분은 많잖아요. 알고보면 우리 모두가 잠재적 장애인이죠."

4월 건국대 새천년관 공연장에서 상연될 '위드 러브'는 국내 최초의 장애인 뮤지컬이다. 교통사고로 하반신 마비가 된 가수 강원래씨의 사연과 비슷한 줄거리에, 강씨가 직접 안무자로 나선다. '최진실 목소리'로 유명한 성우 권희덕씨가 제작자로 참여했다.

"강원래씨와 부인 김송씨의 사연을 TV로 보면서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부모도 하기 힘든 일을 하는김송씨는 천사예요. 만나면 꼭 안아줄 생각이예요. 김씨 같은 며느리를 보고 싶다는 생각도 하구요."

문씨는 윤정희, 고 남정임씨와 함께 60년대 한국영화 트로이카로 불렸다. 65-71년 200 여편의 영화에 출연하며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전성기에 고 장강재 전 한국일보 회장과 결혼, 연예계에서 은퇴한 후 일절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음에도 '한국의 그레타 가르보'로 불려왔다. 중년 남성들에게는 가장 아름다운 여성의 대명사로 각인돼 있다.

2000년에는 가수 최백호씨가 그녀에게 바치는 '어느 여배우에게'라는 노래를 발표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영화.드라마 제의도 간간이 들어온다고 한다. 최근에는 중견 감독의 신작에 주연 제의를 받았지만 이 역시 "30년 넘게 영화를 떠나 있었다"며 고사했다고 한다.

"남편이 세상을 뜬 지 14년이예요. 평범한 여자로서 많이 힘들고 외로웠죠. 한 때는 모든 어려움을 저 혼자 극복하려 교만도 떨었는데, 이제는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고 싶어요. 아름다운 노인, 봉사하는 노인으로 살면서 사회에서 받은 사랑을 되돌려 드리고 싶습니다."

그녀는 지난해 카톨릭 영세를 받았다. 대모는 선배 배우 최은희씨다.

글=양성희 기자<shyang@joongang.co.kr>
사진=변선구 기자 <sunnin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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