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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도청 수사, 역사가 평가할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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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이종백(57.사진) 서울고검장은 28일 "검찰을 위해, 사회를 위해, 그리고 나라를 위해 열과 성을 다해 힘을 쏟으라"고 후배 검사들에게 당부한 뒤 27년간의 검사생활을 접었다.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대회의실에서 열린 퇴임식에서 이 고검장은 중국 고사를 인용, "남에게 베풀었으면 생각지 말고, 남에게서 베풂을 받았거든 잊지 말라(施人謹勿念 受施謹勿忘)"고 말했다. 그는 "명예를 무엇보다 소중히 여기며 살아 왔다"며 "사소한 일도 후배들과 뜻을 모아 결정해 온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기 때문에 후회는 없다"고 회고했다. 이어 "검찰인은 어떠한 외부 간섭으로부터 흔들리지 않는, 자신에 가득찬 당당한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퇴임식에는 임채진 중앙지검장과 이귀남 대검 공안부장, 김수민 법무부 보호국장을 비롯해 후배 검사 200여 명이 참석했다.

◆"불법 도청 근절 성과"=이 고검장은 서울중앙지검장 시절(2004년 6월~2006년 2월) 국가기관의 불법 도청을 근절하는 단초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당시 도청 사건을 총지휘하면서 '독수(毒樹)의 과실(果實)'(독이 있는 나무에 열린 열매에도 독이 들었다는 뜻)이론을 지켜냈다.

그는 수사가 한창이던 2005년 9월 국회 법사위 국정감사에서 "테이프 내용의 공개는 통신비밀보호법상 안 되기 때문에 검찰이 공개할 수 없다"고 밝혔다. 도청 테이프 자체가 엄연히 범죄행위의 결과물로, 도청의 피해자를 조사하는 것은 결국 도청 행위 자체를 정당화하는 결과를 낳는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검찰에는 정치권과 시민단체, 일부 언론에서 도청 내용을 공개하라는 전방위 압력이 가해졌다. 또 전직 국정원장을 구속하는 과정에선 정치권 일부의 강한 반대에 부닥쳤다. 사면초가의 압박을 수사팀은 정면돌파했고, 이 고검장이 외압을 막았다. 당시 수사팀의 한 관계자는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의 시대에 법치주의가 승리한 사건"이라고 말했다. 도청수사 때 공안 2부장이던 서창희 변호사는 "여론에 휘둘리지 않고 원칙을 지키도록 이 고검장이 바람막이가 됐다" 며 "불법도청을 없애는 데 큰 기여를 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 고검장은 퇴임식에 앞서 기자와 만나 "당시는 법률가로서 판단한 것일 뿐"이라고 몸을 낮췄다. 다만 도청사건 수사 때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다"고 속내를 잠시 내비쳤다. 창살 없는 감옥에서 지내다시피 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훗날 역사가 평가해 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고검장은 이 외에도 중앙지검장 시절 행담도개발 의혹, 철도공사 유전개발 의혹, 강정구 교수 국가보안법 위반사건 등 정치.사회적으로 논란이 컸던 대형사건을 무리 없이 처리했다. 중앙지검의 한 부장검사는 "유전개발 의혹사건 등은 나중에 특검에서도 검찰 수사 결과와 다른 점을 찾지 못할 정도로 철저했다"고 말했다.

이 고검장은 퇴임 후 당분간 여행을 하며 휴식을 취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정치권과 법조계 안팎에서는 "요직에 중용될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

김종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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