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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18) 경성야화-제86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1936년 8월에 미나미(남협낭) 조선총독이 부임하자 조선민중에 대한 압박과 학정은 더욱 심해졌다.
미나미 대장은 암우하고 무식한 군인으로 역대 총독 중에서 가장 악질적으로 행동한 자였다.
조선에 있는 일본인조차 그자의 지나친 횡포와 학정을 좋지 않게 생각할 지경이었다. 미나미가 조선사람을 들볶아대던 가지가지의 악행·만행은 다음에 순서대로 기록해 나갈 터이지만 우선 동경에서 일어난 2·26사건이라는 군사쿠데타와 8월에 있었던 손기정의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제패 및 이에 따르는 동아일보 정간, 중앙일보 폐간 등 일련의 이야기를 해야겠다.
동경에서는 백설이 쌓인 2월 26일 새벽에 1천4백명의 젊은 장병들이 수상관저와 재등·도변·고교·영목 등 중신들의 사저를 습격해 모두 총살하고 동경시의 일부를 점거한 변란이 일어났다. 군부의 쿠데타였다.
이에 앞서 1932년에는 청년장교들이 수상관저를 습격해 태양수상을 사살한 사건이 있었고, 이번에 또 이런 큰 변란이 있어서 이것을 계기로 해 일본은 군부가 나라를 이끌어가게 되었다.
이것은 중대한 국정의 변혁으로 그 뒤에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을 일으켜 드디어 일본이 패망하는 길로 내닫게 되는 첫걸음이 된 것이다.
이 2·26사건을 그들은 소화유신이라고 불렀는데 칼을 가지고 일어난 국민은 칼 때문에 망한다는 좋은 표본이 된 것이다.
일본국민은 이 때문에 전쟁을 포기하는 평화헌법을 채택하고 자위의 범위를 넘지 않는 군비를 갖게된 것이다.
다음으로 그해 8월에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제15회 올림픽대회에서 손기정은 일본 팀으로 출전, 올림픽의 꽃이라는 마라톤에서 우승하게 되었다.
이에 앞서 1932년의 로스앤젤레스올림픽에서는 우리 나라의 김은배 선수가 6위에 올라 세계의 주목을 끌었다.
1935년에 있었던 올림픽예선대회에서 손기정은 2시간26분이라는 놀라운 기록을 세워 그때까지의 세계기록 2시간31분을 5분이나 단축시켰으므로 손기정에 대한 기대는 자못 컸었다.
과연 손기정은 실력을 발휘하여 8월 10일의 마라톤경기에서 2시29분의 새 기록으로 당당히 세계를 제패하였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3천리 방방곡곡에서 기쁨의 환호성이 터져 나왔고 움츠렸던 민족의 기세가 일시에 환하게 터져서 2천만 민중은 생기를 띠게 되었다.
우리도 세계적 제1인자가 될 수 있고, 노력하면 세계를 제패할 수 있고, 우리민족에게도 밝은 내일이 있고 희망이 있다는 소리가 높아졌다.
손기정의 마라톤 우승이 민족에 큰 기쁨과 큰 용기, 큰 희망을 주었다.
그러자 8월 25일자 동아일보에 손기정이 월계관을 쓰고 수상대에 오르는 사진을 실었는데 이 사진이 문제가 되었다.
이 사진은 일본에서 발행하는 「아사히 스포츠」라는 조일신문 발행 주간지에서 전재한 것이다.
그 사진에서 손기정의 가슴에 그려진 일장기를 교묘하게 흐려버리고 낸 것이 발각되었다.
손기정의 마라톤 우승은 우리민족에 큰 기쁨을 주었는데 그가 다름 아닌 조선사람이건만 그 가슴에 일본국기를 단것을 보니 분통이 터지고 화가 치밀었다.
그러나 성이 상투 끝까지 오른 총독부는 동아일보 체육부기자 이길용과 삽화가 이상범을 검거하고 신문은 무기정간 처분을 내렸다.
총독부에서는 이 사건의 관련자로 이길용·이상범 외에 8명을 구속해 40일 동안 무서운 문초를 하고 결국 많은 사원을 신문사에서 내 쫓게 했다.
동아일보와 함께 조선중앙일보도 똑같이 일장기를 말살하였었는데 다행히 경찰당국이 이것을 발견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조선중앙일보사 측에서는 필경 이것이 발각될 것이므로 그전에 자수하는 것이 벌을 가볍게 받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운동부 기자 유해붕을 경찰에 자수시키고 신문은 9월 5일자로 자진 휴간하였다.
그 뒤 조선중앙일보는 내부의 알력으로 신문을 발행하지 못하다가 이듬해인 1937년에 발행권이 취소되었다. <교려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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