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장관의 방(분수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트랜지스터를 발명한 것은 미국이지만 그것을 소형 라디오로 상품화한 것은 일본이다. 중국과 한국을 거쳐 들어간 부채를 접는 부채로 만들어 주머니속에 들어가게 만든 것도 일본이었다. 일본 사람들은 이처럼 큰 것을 작게 만드는 재주가 비범하다.
80년초 일본에서 처음 출판되어 베스트셀러가 되었던 이어령씨의 명저 『축소지향의 일본인』은 이와 같은 일본문화의 특성을 극명하게 파헤쳐 화제가 되었다.
그에 따르면 일본 사람들은 전쟁터나 연극공연장에서 번거롭게 차리는 밥상을 줄여 도시락을 만들었고,자연을 집안으로 끌어들여 분재를 가꾸었다. 같은 인형이라도 그들은 손과 발을 생략해 아네사마인형을 만들었다.
그뿐 아니라 시가에서도 복잡한 말을 간단히 줄이는데 특기가 있다. 세계에서 가장 짧은 시형식인 하이쿠(배구)가 그 좋은 예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이런 축소지향의 문화적 배경에서 그들은 이른바 경부단소의 상품을 개발했고,그 보잘 것 없는 것같은 조그만 상품들이 오늘의 경제대국을 이룩하게 했다.
이에 비해 우리의 의식구조는 어떤가. 어제 날짜 중앙일보를 보면 우리나라 장관의 방은 50평인데 비해 일본은 36.4평,독일은 27.3평,또 차관의 방은 우리가 30평인데 비해 일본은 24.2평,독일은 23.6평으로 나타났다.
이를 두고 우리 문화의 특성을 확대지향적이라고 하면 다소 확대해석이 되겠지만,그러나 우리의 생활 주변을 둘러보면 그런 소지가 적지 않다.
우선 새로 짓는 아파트는 한결같이 평수가 커지고 있고 거리에 굴러다니는 자가용도 하루가 다르게 대형화 추세로 치닫고 있다. 거기에 부채질이나 하듯 정부의 씀씀이도 자꾸 불어난다. 과소비는 마치 관과 민이 누가 더 잘쓰는가 내기하듯 확대지향적이다.
일찍이 육당 최남선은 「역사를 통해서 보는 조선인」이라는 글에서 한국인의 단점을 형식증에 걸려 있어 외면치레를 제일로 치고 공리와 허명에 얽매이며 허례로 인해 실무를 희생시킨다고 했다. 말하자면 형식주의·권위주의·자기과시욕이다.
장·차관 방이 턱없이 크고 상대적으로 국장방을 작게 한 것은 그런 특성을 잘 드러낸 사례라 하겠다.<손기상 논설위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