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백수 120만 명, 한 표 어디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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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사람의 사고와 행동은 자신이 처한 상황의 지배를 받게 마련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중요한 정치 행위인 투표권 행사에도 유권자의 상황이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유권자를 둘러싼 여러 상황 가운데 현실적으로 가장 무섭게 다가오는 것이 취업 상태다. 한창 왕성하게 활동하고 돈 쓸 데가 많을 나이에 일자리가 있느냐와 구두 굽이 닳도록 돌아다니지만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는지 여부는 물론 지금의 일자리가 본인이 원하는 괜찮은 곳인지, 그리고 주어지는 보수에 만족하는지 등이 그 사람의 심리 상태와 행위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유권자를 경제활동 상태로 들여다보는 것은 의미가 있다. 오는 12월19일 17대 대선의 유권자는 선거일을 1주일 앞둔 시점의 주민등록인구로 확정되는데, 이들의 경제활동 상태를 가늠하기 위해 가장 최근 정부 공식 통계인 2006년 12월 고용 동향을 살펴보자. 이는 대통령선거 시점과 딱 1년의 시차를 두고 있어 계절적 요인을 감안한 추세를 읽는 데도 도움이 된다.

지난해 12월 기준 20세 이상 인구는 3,577만4,000명. 이 중 2,279만3,000명이 취업자, 74만8,000명이 실업자다. 그리고 실업자를 경제활동인구(취업자+실업자)로 나눈 실업률은 3.2%다(고용 통계는 15세 이상 인구를 대상으로 10세 간격으로 나눠 발표하는데, 유권자가 만 19세 이상이며 15∼19세 연령층의 대부분이 학생으로, 비경제활동인구라서 20세 이상을 따로 계산했다).

취업자도 자영업자냐 임금근로자(봉급생활자)냐, 또 임금근로자는 정규직이냐 비정규직(전체 임금근로자 1,535만1,000명 중 35.5%인 545만7,000명)이냐에 따라 명암이 엇갈린다. 또 어느 업종에서 어떤 직무에 종사하느냐에 따라 지갑의 두께가 결정되며 세상을 보는 눈도 달라진다.

취업자가 이럴진대 실업자의 처지는 더욱 딱하다. 더구나 실업 상태가 길어지면 사회의 불만세력화할 수 있어 문제다. 특히 전체 실업자의 절반에 가까운 32만6,000명이 20대로서 이 연령대의 실업률은 7.5%로 껑충 뛴다. 이 중 4년제 대학 졸업 이상 고학력 실업자가 8만4,000명이다.

취업자도, 실업자도 아닌 비경제활동인구라고 걱정이 없을까? 가사·육아·연로·심신장애 등의 사유야 당장 취업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하지만 통계청 조사 기간에 ‘적극적인 구직활동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아예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 비경제활동인구로 편입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문제다.

바로 ‘그냥 쉰다’는 경우와 취업준비생, 구직 단념자로, 이른바 ‘실망 실업자군’인 이들을 합친 체감실업자는 279만3,000명, 실업률은 10.9%로 높아진다. 특히 이 중 20대 청년백수는 약 120만 명이다.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후보는 연평균 7%의 성장률을 공약으로 내걸었는데, 참여정부 4년(2003∼2006년)의 평균 성장률은 4.2%로 아시아 주요 국가 중 거의 꼴찌 수준이다. 게다가 올해 경제도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자 17대 대선의 향방을 좌우할 주요 변수로 경제문제가 꼽힌다. 이를 의식한 일부 대권 주자들은 벌써 6∼7%대의 성장률과 일자리 창출, 1인당 국민소득 목표 등을 들고 나왔다.

대권 주자들은 실현 가능한 목표와 정책을 제시해야 한다. 그리고 유권자는 막연한 기대에 현혹되지 말고 냉정하게 판단해 소중한 주권을 행사해야 한다. 대선에서의 ‘충동구매’는 유권자를 5년 동안 후회하게 만들 수 있다.

양재찬_월간중앙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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