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성의… 입씨름… 시간낭비(국감추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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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알맹이 없는 「총격사망」 감사/나올수 없는 증인 채택공방/증언 말꼬리 잡다 핀잔자초
서울대대학원생 한국원씨의 피격사망사건을 집중 추궁할 것으로 예상됐던 내무위의 경찰청 감사는 실체적 진실의 규명과는 거리가 먼 여야간의 말싸움으로 끝났다.
여야는 우선 증인채택문제로만 하룻동안을 허송,증인의 진술을 불과 2시간밖에 듣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증인들의 증언의 말꼬리나 잡아 자기측에 유리한 정황을 이끌어 내려다가 증인들로부터 핀잔과 불만을 자초하는 한심한 모습을 연출했다.
민주당측은 한씨부인 서윤경씨의 증인채택을 고집했으나 서씨의 소재조차 파악을 못하다가 이날 오후 고향인 구례에 입원중이라는 사실을 알아내는 허점을 드러냈다. 결과적으로 이틀간의 감사기간을 불과 4시간 정도로 단축,말승강이나 벌이는 국회의 구태의연한 모습을 드러낸 꼴이 돼버렸다.
여측은 이 사건과는 무관한 증인 1명을 채택,불과 5분간 학생시위의 피해로 동네주민이 고생하고 있다는 하소연을 듣는 등 경찰입장만 철저하게 두둔하는 무성의한 자세를 보였다.
○…26일 오후 9시20분부터 2시간동안 진행된 참고인 신문에서 여측은 경찰총기 사용의 정당성을 입증하려한 반면 야측은 부당성을 드러내는데 초점을 맞췄다.
이날 참고인 신문에서 중점적으로 다뤄진 부분은 ▲시위대 규모와 ▲경찰의 총기사용 당시의 시위상황 ▲시위의 격렬도 등 사건의 주변정황 부분.
경찰이 사건당시 신림2 파출소를 습격한 시위대 숫자를 2백명 정도로 주장하고 있는데 대해 민자당측 증인 고제열씨(56·식당주인)는 『숫자는 정확치 않지만 녹두골목에서 나온 학생만 1백50명 정도』라고 답변.
이에 허탁 의원(민주)이 고씨에게 『똑똑히 봤느냐』고 윽박지르다가 고씨로부터 『우리만 귀찮게 할게 아니라 심각한 상황을 직접와서 봐야 할 것』『왜 말꼬투리를 잡느냐』는 반박을 받아 망신을 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민주당측 증인 김미호군(22·서울대 경영4)은 『삼성교·동방교·버스종점 등 세방향에서 각 10여명씩 모두 30여명 규모였다』며 자신이 직접 그린 지도를 갖고나와 설명.
김군은 『8∼10분의 공방전이 있은뒤 파출소앞에 시위대 2명 정도가 있는 것을 봤다』고 했고 한씨를 병원까지 호송했던 김완기군도 『당시 파출소앞에는 시위학생 3명이 있었다』며 총기를 사용할 상황이 아니었다고 주장.
학생들 증언이 전혀 다르자 민자당의 홍희표·최정식·권해옥 의원 등은 『쓸데없는 소리말아』『그렇게 자신 있어』라는 등 고함치자 김군은 『검찰에서는 자유스런 분위기에서 진술했는데 여기서는 잘 대답 못하겠다』고 의원들을 비아냥.
시위의 과격도에 대해서 고씨는 『파출소가 전소되는줄 알았다』『순경들의 인명피해를 걱정할 정도』라고 밝혔는데 김근수 의원(민자)의 『총을 쏘지 않으면 안될 상황이 아니었느냐』는 주문에는 『민간인이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겠느냐』고 핀잔.
민주당측 참고인들도 당시 시위가 격렬했음은 모두 시인.
학생,참고인의 진술이 엇갈리는 가운데에도 한씨 피격장소에 시위대가 없었다는 사실이 학생들의 진술에 의해 확인돼 이찬구 의원(민주)의 『조경위가 한씨주변 시위대를 향해 정조준했다』는 주장은 완전히 터무니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경찰청에 이어 경찰청 감사도 사건에 대한 아무런 사전 준비없이 즉석에서 말꼬리나 잡는 여야의원들의 한심한 수준만 드러냈다.<김두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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