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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서 3700원짜리 와인 서울선 호텔 가면 30000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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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독일 자동차 부품업체 게트락의 한국 주재원인 존 그레이엄(68). 미국에서 오래 살아 골프를 즐겨 쳤다는 그는 한국의 골프장 이용료가 턱없이 비싸다고 볼멘소리를 한다. 그는 "서울에 온 직후 사업 파트너와 서을 근교 퍼블릭 골프장에 갔는데 그린피가 15만원이나 돼 깜짝 놀랐다"며 "뉴욕 등 미국 주요 도시 골프장보다 배 이상 비싸다"고 말했다. 사무실 임대료가 너무 비싸 서울 광화문 근처 한 레지던스 호텔(장기 숙박 외국인을 위한 주거용 호텔)에서 10개월째 숙식을 하면서 업무를 보고 있다는 그는 고급 호텔엔 얼씬도 안 한다고 했다. 맥주 한 병 마시는 데 1만원가량 줘야 해 갈 엄두가 안 난다고 했다.

외국계 은행에서 임원으로 근무하는 영국인 휴 하웰스(33)는 서울 부임 이후 좋아하던 와인을 예전처럼 즐기지 못한다. 서울에 온 지 얼마 안 됐을 때 한 호텔 레스토랑에서 와인을 시키려 가격표를 봤다가 기겁했단다. 그는 "파리 등 유럽 도시에서 3유로(약 3700원)만 주면 즐길 수 있는 보졸레 누보(햇포도로 만든 포도주)가 서울에선 3만원 정도 한다"고 말했다.

사업차 한국에 머무르거나 출장 온 외국인마다 서울의 물가 수준에 혀를 내두른다. 외국인뿐만 아니다. 해외에서 일을 하다가 오랜만에 귀국한 한국인도 마찬가지다.

중국 상하이에서 6년간 근무하다 지난해 귀국한 한화석유화학 PVC해외영업팀 정승욱(40) 차장은 "상하이에선 1인당 5만원 정도인 호텔 식사비(광둥식 해산물 요리)가 서울에선 10만원은 족히 넘는다"며 "상하이 주재원 시절의 품위를 유지하려면 서울에선 30% 이상 돈을 더 써야 한다"고 했다.

미국 워싱턴 월드뱅크에서 근무하다 2일 귀국한 정보통신부 이용환(39) 미래전략기획팀장은 "미국 근무 당시 한국 출장을 다녀온 동료마다 '서울 호텔비가 너무 비싸다'고 불평하더라"고 전했다. 뉴욕에서 20만원이면 해결되는 호텔 숙박비가 서울에선 30만원을 넘어서기 때문이란다.

유엔이 매달 세계 각국의 하루 출장 수당을 책정해 발표하는 자료(DSAR)에 따르면 서울은 2004년 말께부터 도쿄 출장수당을 앞질렀다. 또 세계적으로 물가가 비싼 곳으로 꼽히는 뉴욕.파리보다도 서울이 높다. 이같이 서울 출장수당이 세계 주요 도시보다 높게 책정된 것은 최근 원화 가치가 올라간 탓(환율 하락)도 있지만 비즈니스 관련 서비스.상품의 물가가 많이 올랐기 때문이다.

미국 여행잡지 '비즈니스 트래블 뉴스'가 매년 발표하는 '비즈니스 여행지수' 역시 서울 출장비를 높게 매겼다. 2004년 11위(하루 약 486달러)였던 서울이 지난해 3위(약 567달러)로 껑충 뛰었다. 이 지수는 세계 100개 도시를 대상으로 특1급 호텔의 숙박료.음식비.세탁비 등을 종합해 산정한다.

서울 체류비가 왜 이렇게 비쌀까. 우선 비즈니스 호텔이 턱없이 부족해 한국에 출장 온 외국인은 5성급 호텔 외엔 마땅히 머무를 곳이 없기 때문이다. 하루 5만~10만원(13평 기준)으로 숙박할 수 있는 레지던스 호텔의 경우 서울엔 19개뿐이다. 중국 베이징만 해도 레지던스 호텔이 600개가 넘는다.

안승호 숭실대 경영학과 교수는 "지난해 8월 대만 5성급 호텔에서 4박5일 머무르는 데 비용이 60만원에 불과해 놀랐다"며 "서울 호텔의 하루 숙박료가 30만원이 넘는 것은 호텔이 부족한 결과"라고 말했다.

서비스업에 불리한 세제와 더딘 시장 개방도 문제라는 지적이 있다.

손영기 대한상공회의소 경제조사팀장은 "서비스 관련 세금 등을 낮춰야 한다"고 말했다. 서비스업에 높은 세금을 부과하다 보니 고스란히 기업 활동 비용으로 전가된다는 것이다. 현오석 대한무역협회 무역연구소장은 "쇠고기 값의 세계 평균치는 국내 시세의 절반 수준에 불과한데 농수산물 시장의 개방이 덜 돼 국내 음식값이 비싼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창규.문병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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